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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이 작가, 질척할 수 있는 연민을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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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이 작가, 질척할 수 있는 연민을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입력
2014.04.0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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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성공이 뭔지 알아요?"

다단계 판매에 빠져든 스물 한 살의 '나'를 집으로 끌고 가려 온 아버지에게 '나'를 끌어들인 친구가 "아주 노골적인 무시와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되바라지게 내던진 말이다('아이들'중).

김금희(35)의 첫 소설집 (창비 발행)에 등장하는 지방 도시의 젊은 주인공들-사수생이거나 지방대생, 실직자이거나 저임금노동자-대부분이 흉중에 깊이 품은 항변이자 울분을 대변하는 저 말은 단 한 차례 등장할 뿐인데, 문맥상 매우 우스꽝스럽지만 절실하게 서글프다. 그 서글픔의 원인으로는 어떤 아득한 상황에서도 "명랑을 잃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무슨 수로 견딜까"를 고민하는 이 연민 넘치는 작가의 의연한 태도를 지적해야 할 것 같다.

2009년 등단 후 써온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을 관통하는 정서는 그러므로 연민과 명랑이다. 소설의 화자들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를 다짐하는 캔디들처럼 스스로 "생의 부력"을 생성해내려 분투한다. 재수학원에서 만난 가장 못난 친구의 아이를 덜컥 임신하게 된 것도(표제작), 사무실 삼아 매일 출근하는 카페에서 슬픈 자기소개서를 쓰던 여자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 것도('당신의 나라에서'), 입만 열면 베트남 참전 얘기를 해대며 허세를 부리다 가산마저 탕진해버린 아버지를 보듬는 것도('장글숲을 헤쳐서 가면') 모두 연민 때문이지만, 거기엔 어떤 축축한 물기나 끈적한 점도 같은 것이 없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고 있으면 제풀에 명랑해져서 사투리로 개안타" 하는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친구 M처럼, 슬픔이 산뜻해질 때 연민은 더욱 짙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인천 출신 작가답게 인천과 지방 도시들을 주요 배경으로 삼는 김금희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특히 중요한 서사의 축을 형성한다. 지난 십 수년 간 타도 내지 부정의 대상이었던-특히 여성 작가의 소설 속에서-아버지는 그의 소설에서 복권까지는 아닐지언정 연민에 포섭되는 대상으로서 어엿하다. 부산과 인천의 목재공장에서 평생을 일하다 정년도 못 맞고 한쪽 발목을 절단하게 된 아버지는 그 옛날 자식의 친구에게서 성공을 아느냐는 조롱을 당했지만, 서른이 넘은 '나'는 열살 적 아버지로부터 배운 '함수율'이 생의 원리임을 이제서야 터득한다. 품을 수 있는 수분의 양이 정해져 있어 바다에서도 흠뻑 젖지 않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가라앉지 않고 바다를 건널 수 있으리라고 슬픔 속에서도 긍정해보는 것이다. 아버지 덕분에.

작가는 "아주 속악하고 현실적으로 살고 싶지만 무심히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세계는 불행하고 우리는 고향을 잃었으니까요." 그가 "연민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까닭일 것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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