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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들은 자신을 옥죄는 시스템과 투쟁… 그게 서구 페미니즘과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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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성들은 자신을 옥죄는 시스템과 투쟁… 그게 서구 페미니즘과 다른 점"

입력
2014.04.0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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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 '알라의…' 등 대표작 선봬부르카 쓰고 강간당하는 여인에 연민의 시선 보내는 서구…피상적이면서 가끔은 불온… 모든 문화에 적용될 순 없어"난 운동가도 대변인도 아닌 작가여성들 겪는 정신적 문제… 그에 맞서는 태도 보는 것에 흥미"

이슬람권 여성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한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연민이다. 새까만 부르카에 묶인 여성, 교육 받을 권리를 부르짖다 머리에 총을 맞은 14세 소녀, 강간 당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처벌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판례.

그러나 이들을 향한 연민은 많은 경우 피상적이고 가끔은 불순하다. 서구가 이슬람권 국가를 침공할 때 탄압 받는 여성들은, 민주주의 수호와 함께 더 없이 좋은 구실이다. 하지만 부르카를 벗어 던지고 청바지를 입는 것이 이들이 진짜 원하는 것일까. 그들 스스로 말하는 자유의 실체는 무엇인가.

"서구의 페미니즘이 모든 문화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 이란 여성은 남자처럼 되려고 경쟁하지 않는다…완벽한 세상은 남성성과 여성성이 평형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된다."(쉬린 네샤트, 2010년)

이란 작가 쉬린 네샤트는 이란의 정치와 이슬람 여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쉬린 네샤트 전은 그의 20년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회고전이다. 초기작 '알라의 여인'을 비롯해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격동', 2009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은 '여자들만의 세상' 등 63점이 나왔다.

'알라의 여인'은 17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가 1993년 뉴욕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이슬람혁명(1979)이 일어나기 전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그는 1991년 다시 찾은 고국에서 급격히 보수화한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작품 속 부르카를 쓴 여성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손에 든 장총이 얼굴을 반으로 가른다. 입은 고집스레 다물고 있지만 눈은 연일 소리지른 사람처럼 기진맥진하다. 사진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오직 여인의 얼굴에 빼곡히 쓰인 파르시어(이란어)뿐. '오 밤의 간호사여, 부상 입은 도시가 죽음의 약탈로부터 쉴 수 있도록. 당신의 불면은 진정 어린 신념에서 나온다.'(타헤레 사파자데의 '불면의 충성')

작가는 이란 여류 시인들의 글귀를 이용해 "침묵하는 듯 보이지만 할 말이 너무도 많았던" 이란 여성의 마음을 안구와 얼굴 사진 위에 써넣었다.

네샤트는 1996년 반체제 인사로 몰려 테헤란 공항에 구금돼 심문을 받았다. 이후 다시 고국을 찾지 않은 그가 1998년 발표한 영상작 '소란'은 보다 구체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노래하는 남성 가수와 텅 빈 극장에서 막힌 듯한 소리로 절규하는 여성의 모습을 두 개의 마주보는 영상에 담아 동시에 상영하는 이 작품은,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노래하는 것을 금지한 이란의 법과 관련이 있다. 완벽한 기교를 구사하며 노래하던 남성은 맞은편 여성이 입을 열어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짐짓 놀라며 침묵한다. 그 놀라움이 불법행위를 목격한 것 때문인지, 태초의 소리 같은 그 음성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전시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한 작가는 이메일로 보낸 질문에 답변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신의 작품에서 표현된 여성의 해방과 서구식 페미니즘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서구 여성운동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까'인데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는 이란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거나 싸울 마음이 없다고 본다. 그들이 싸우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서구에서만 작업하는 것이 당신 작품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구현하는데 어려움을 주지는 않나. 최근작에서 초기의 격렬함을 찾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6년 이후 이란에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중동 정치의 폐쇄성에 막혀 있다. 최근작에서 당신이 받은 느낌은 내가 미디어를 통해 접한 것들로 작품을 날조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초기작 '알라의 여인'은 무장 혁명인 이슬람혁명에서, 최근작 '왕서(The book of new kings)'는 대중 봉기인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았으니 느낌이 다를 수 있다."

-당신이 거주하는 미국은 여성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나.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를 작품화할 생각은 없나.

"대답하기 애매하다. 내가 운동가가 아니라 작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페미니즘에 접근하는 각도는 늘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다. 나는 때론 모든 여성의 대변자와 같은 위치에 선 것이 불편하다. 나는 사회 문제를 알리는 것보다 여성이 겪는 정신적 문제와 그에 맞서는 방식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롭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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