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퇴직 후 개인사업을 하려던 이모(42)씨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7년간 대형 보험사에서 신입 보험설계사 교육을 맡았던 육성팀장이었지만 나올 때 퇴직금을 한 푼도 못 받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씨에게 '보험설계사 신분이어서 퇴직금 지급대상이 아니다'라고 통보했다. 다른 보험사에서 보험설계사로 근무했던 이씨는 2008년 육성팀장으로 채용됐다. 당시 회사는 교육업무를 전담하는 조건으로 퇴직금을 약속했다. 이씨는 "회사 사정에 따라 정규직원처럼 야근이나 잡무를 종종 했지만 수당은 받아본 적이 없다"며 "군말 없이 일한 대가가 계약 해지 통보라는 사실이 허탈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씨처럼 보험설계사 신분으로 정규직원 업무를 맡은 보험사 직원들이 수당ㆍ퇴직금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정규직원처럼 일하지만 고용 신분은 보험설계사이어서 복리후생과 퇴직금 등 회사가 제공하는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해 파견노동자처럼 고용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씨를 비롯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한 LIG손해보험 육성팀장 17명은 지난 3일 서울지방법원에 퇴직금 청구소송을 냈다.
보험사들은 신입 보험설계사 교육업무를 보험설계사에 위탁하고 있다. 현장경험이 풍부하고, 교육능력을 갖춘 설계사 중에서 육성팀장을 발탁 채용한다. 육성팀장은 신입 보험설계사에 영업노하우를 전수해주거나, 동행하면서 신규계약처리 과정, 상품설명 방법 등을 가르친다. 전화(TM)영업 부서에서 영업을 독려하거나 인력관리를 맡기도 한다. 이 업무를 전담으로 하지만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기 때문에 물론 영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업무가 많아 실제 영업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업에 나서지 못하는 대신 비교적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다. 보험사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기본급과 성과급을 준다. 기본급은 200만원 선이고 성과급은 본인이 양성한 설계사의 실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100만원 안팎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자기가 관리하는 신입 설계사 실적이 좋더라도 수수료의 일부를 모두 받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인사고가를 받고, 상향한도 제한을 둬 일정금액만 지급받는다. 예컨대 한 보험사의 경우 A~D로 평가등급으로 나눠 최상의 등급을 받더라도 최대 200만원만 지급한다. 이를 근거고 이번에 소송을 낸 육성팀장들은 "업무성격이나 보수체계 모두 보험설계사보다는 보험사 정규직에 훨씬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소송에 보험사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육성팀장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기에는 비용이나 리스크가 크다" 고 했다.
과거에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지만 보험설계사가 승소한 적은 없다. 2010년 6월 교보생명 트레이너(육성팀장)가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해 대법원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보험계약유치 등 실적을 올리면 보험설계사와 마찬가지로 업적비례 수수료를 받는 점 등의 이유로 교보생명의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례 이후 보험사들은 관행적으로 설계사에 지급했던 형식적 퇴직금도 마저 없애버렸다. 라이나생명 TM관리직 등도 현재 퇴직금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소송의 변론을 맡은 오윤식 변호사는 "특수고용직 근로자라고 해도 업무특성상 정규직원에 가깝다면 회사가 적절한 처우를 해줘야 한다"며 "육성팀장과 같이 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규정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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