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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자이를 버린 미국의 한계

입력
2014.04.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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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전통의상이 트레이드 마크인 겉모습부터 그렇다. 카르자이는 늘 소매 없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아프간 전통의상 튜닉과 녹색 망토, 염소가죽으로 만든 뾰족 모자 차림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승만은 두루마기를 입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카르자이는 인도 유학파로 4개국어를 구사하며 무장반군을 이끌고 소련에 대항했다. 미국 후원 속에 초대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극적인 과정들도 카르자이는 이승만에 못지 않다. 둘은 12년 집권하며 전쟁을 치렀고, 권력부패로 신임을 잃는 과정까지 유사하다. 종종 미국의 꼭두각시이길 거부하며 미국을 이용한 것도 공통된다. 이승만은 한반도를 떠나려는 미국을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주저앉혀 한반도에 평화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르자이는 1년째 미국과 안보조약 서명을 미루며 유리한 조건을 받아내려 한다. 또 미군 작전으로 민간인이 희생된 것을 공개 비난하며 반미 정서를 정치에 적절히 이용한다. 휴전협정을 하고 나서 미군을 철수시키려던 미국 정부를 벼랑 끝 전술로 압박해 방위조약을 끌어낸 이승만을 보는 듯하다. 이처럼 닮은 둘의 결정적 차이는 권력교체 과정에 있다. 이승만은 영구집권을 꾀했지만, 카르자이는 순순히 권력을 내려 놓는 절차를 밟고 있다.

투표를 하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탈레반의 경고 속에 아프간에서 5일 세 번째 대선이 진행됐다. 선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카르자이가 투표를 하며 들어 보인 오른손 검지일 것이다. 보라색 잉크가 묻은 그의 검지는 이승만이 가져보지 못한 민주적 권력교체의 상징이다. 미국인에게 조지 워싱턴의 위대함이 왕이 일반적이던 18세기에 임기제 대통령의 전통을 세웠다는 사실이고 보면 카르자이의 유산은 작지 않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게 카르자이는 이승만처럼 말 다루기 쉽지 않은 빈국의 지도자에 불과하다. 아프간을 그의 반대세력 탈레반에서 구해 내고, 그를 권좌에 앉힌 게 미국이다. 2002년 탈레반 추격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헬리콥터를 급파해 구해줬다. 그런데 카르자이는 오바마 정부가 미군과 미군장비까지 철수한다는 제로옵션으로 압박하는데도 안보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미군 철군 이후 영향력 감소와 반 카르자이 정서를 누그러뜨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긴 하지만 명분은 그에게 있다. 이런 카르자이에게 워싱턴이 화를 내고, 미국 언론도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뒤늦게 이승만의 치적인 한미동맹을 동북아의 린치핀(바퀴의 고정핀)에 비유하듯, 앞으로 미국의 아프간 이해는 카르자이의 업적 속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카르자이를 일찍이 평가한 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다. 부시는 아프간 국민에게 오랫동안 가져보지 희망을 준 것만으로도 그를 존경한다면서, 카르자이를 좋은 지도자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지도자답게 대우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부시와 달리 친미와 반미 줄타기를 하는 카르자이를 포용하지 않았고, 부패를 폭로해 훌륭한 지도자 자리에서도 끌어내렸다. 사실 이처럼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만들며 오락가락하는 것은 아프간에서 반복되는 미국 전략의 한계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조차 미국이 아프간에서 보여주는 행태를 제국의 외교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소련군의 아프간 철군을 논의할 때다. 당시 대처는 미국이 정치적 해법에 반대한 채 탈레반을 지원해 소련을 압박하자 "그들은 이 지역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프간 통치 경험이 있는)영국이나 소련에 견줄 수 없다"고 단견을 지적했다. 그때 지원했던 탈레반과 미국은 12년째 싸우고 있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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