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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안 좋아 손님도 없었다는 고인의 삶터엔 또 다른 트럭이…

입력
2014.04.0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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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직송' 김모(51) 씨의 1톤 봉고트럭에는 잘 익은 토마토가 제법 그득했다. 적재함 안쪽에는 뜬금없게도 강냉이와 튀김 과자들이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쭉 강냉이를 팔았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사람들이 잘 안 먹어요. 며칠 지나면 눅눅해지고 튀김과자는 기름 냄새도 나고…." 그래서 과일로 주종을 바꿔 봤지만, 재미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김씨는 말했다.

1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 인근 주택가. 김씨는 "남일 하러 다니다가 허리를 다쳐 1년쯤 전부터 트럭 행상을 하고 있지만, 아침 9시부터 나와 있어도 하루 종일 2만~3만원, 잘 되는 날도 5만~6만원 매상이 힘들다"고 말했다.

"강냉이 큰 포대를 1만4,000원에 받아와요. 그걸 9봉지로 나눠 봉지당 3,000원, 두 봉지 사면 5,000원 받아요. 다 팔아봐야 만원도 안 남는데, 다 팔 수 있냐? 못 팔아. 눅눅해진 거 팔았다간 사먹던 손님도 끊기거든."

"새벽에 외상으로 받아온 저 토마토가 30만원어치예요. 지금까지 3만원어치 팔았어. 난 kg당 5,000원에 파는데, 대형마트에 가보면 보나마나 4,500~4,700원쯤 할거야. 그러니 누가 내 꺼 사먹겠어? 하지만 우린 또 그렇게 안 팔면 못 살아. 저거 다 팔면 반 정도 남는데, 다 못 파니까 내일 모레쯤서부턴 할인을 해야 해. 물러지고 상하기 전에 밑지고 파는 거지. 그렇게 번 돈에서 기름값 빼고 밥값 빼면 외상값 갚기도 힘들어. 그렇게 빚이 느는 거지."

"툭하면 단속이야. 노점 단속에 주차 단속. 사정해서 딱지(과징금)는 면한다 쳐도 두어 바퀴 도망 다니다 보면 그날 장사는 꽝이야. 전노련(전국노점상총연합)에 가입하면 단속은 좀 봐준다더만 회비를 내야 해. 그래도 난 혼자니까 이렇게라도 버티지만 그 양반은…."

김씨가 말한 '그 양반'이 지난 달 27일 자신의 과일 행상 트럭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모(50)씨다. 고인은 김씨 트럭에서 300m 남짓 떨어진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인근 노점상들의 마음을 흔들어, 두셋씩 모인 자리에선 각자의 경험담과 전해들은 소문을 나누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고인은 장사하던 자리에서 좀 떨어진 대로변에서 발견됐다. 그를 발견한 것은, 2년 남짓 바로 옆 자리에서 말벗으로 지낸 붕어빵 장수 이모(53 )씨였다.

"그 사람 트럭을 거기서 본 건 25일 저녁이었어요. 대림역 앞에서 팔다가 저녁 장사하러 이쪽으로 옮겨 오는데 거기 정씨 트럭이 서 있는 거야. 장사하는 자리도 아닌데…,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혹시 싶어 가봤더니…. 그날 밤에 갔던 거야, 25일 밤에."

고인은 1톤 트럭 운전석에 머리를 두고 반듯이 누워 있었다고 한다. 빈 소주병 두 개, 과자 봉지, 생수 두 병. 트럭 적재함에는 팔다 남은 과일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경찰은 '생활고에 따른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영등포경찰서 백부흠 형사팀장은 "월세는 밀렸고, 장사는 안 되고, 물건은 떼 와야 하는데 외상 빚도 제법 있는 것 같았어요. 몸이 편찮은 부인과 아직 공부하는 두 아이가 있고, 돈 들어갈 덴 많은데 나올 데는 없고…, 막막했던 것 같아요. 부인이 장례비 걱정부터 하길래 우리가 동사무소에 연락해서 도움을 부탁했어요."

또 다른 고민과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을 통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유족은 응대를 거부했다. 이씨는 "결국은 돈이지 뭐가 있겠어.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서 다행이라고, 걔들 공부시키는 게 낙이라고 자주 말했어. 며칠 전에는 안동 가서 산지 물건(사과)을 떼오고 싶은데 밑천이 없다고 낙담하데. (중도매인에게 진) 외상 빚이 제법 되는 눈치였어. 여기서 함께 장사한 뒤로 그 사람 단 하루도 쉬는 걸 못 봤는데…"

"이맘때부터는 아파트 '바자'를 다니곤 했어요. 그것도 팀이 있어. 팀장이 트럭 행상들 몇을 구색 맞춰 짠 뒤에 아파트 단지 부녀회랑 계약해서 하루 장사를 하는 거지. 팀장이 회비를 걷어 부녀회에 주는데 고씨 말로는 한 번 나가려면 20만원은 내야 한다더만."

"겨울엔 그런 행사도 없으니까 줄곧 여기서 나랑 장사를 했지. 건너편엔 마을버스 정류장도 있고 아파트단지도 많아 목이 좋지만 자리 값만 못해도 1,000만원은 할걸. 리어카 하나 놓으려고 해도 500만원은 줘야 해."

목이 안 좋아 자릿세도 없다는 그의 빈 자리에는 어느새 또 다른 강냉이 트럭이 들어와 전을 펼쳐놓고 있었다.

서울 가락동시장 농산물 경매는 새벽 2시쯤부터 시작된다. 생산자들이 실어온 과일은 물량이 많은 제철 과일서부터 주로 경매되는데, 물건은 서울농수산물유통공사에 참여한 대형 도매법인을 통해 중도매인에게 넘어가고, 소매상들은 중도매인에게 원하는 만큼 받아 간다. 경매는 새벽5시면 끝나는데, 소매상들은 이르면 새벽 3시, 늦어도 7시 전에는 시장에 나와야 물건을 받을 수 있? "50박스씩도 사가는 큰 소매상도 있고, 1박스 2박스씩 사가는 이들도 많아요. 아무래도 많이 사면 좀 싸게 좋은 걸 가져갈 수 있고, 적게 사면 힘들 테고, 단골이라도 현금이냐 외상이냐에 따라 또 다르고…." 중도매인인 그는 "다들 워낙 거래하는 소매상이 많아 고인이 누구와 거래했는지 알 수는 없을 것"이라고, "거래가 뜸해져 빚 독촉 전화라도 해봐야 알겠지"라고 말했다. 행상 트럭들은 2일 새벽에도 줄지어 가락시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서울의 노점상은 8,826곳. 이 가운데 차량 노점은 좌판(2,770곳ㆍ31.4%)에 이어 2,071곳(23.5%)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전체 노점은 전년보다 5.2% 줄었지만, 차량 노점은 144%(849개→2,071개)나 증가했고, 이 가운데 농수산물은 25.4%였다.(서울시 '2013 거리가게 실태조사')

취재하는 동안, 고씨의 죽음이 서둘러 덮이고 감춰지려 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유족들부터 이미 보도된 것들까지 긁어 모아 지우고 싶다고, 어서 잊고 싶고 잊히고 싶다고 경찰에 말했다. 당장은 아파서일 테지만, 자살이 부끄럽고 가난이 부끄럽고 가난 때문에 망쳐진 일상과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감추고 싶은 듯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는 거라 오직 자신의 운과 노력과 능력 탓이라는 생각. 복지도 사회 안전망도 국가와 사회의 역할도 끼어들 틈이 없는 사적 책임과 강박적 염치.

노벨 경제학상을 탄 폴 크루그만은 한번 뇌리에 박힌 생각 중에는 나중에 충분한 근거를 통해 그릇됐음이 입증된 뒤에도 폐기되지 않고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것들이 있다며, 그런 생각을 '좀비(zombie) 아이디어'라 했다. 부자들의 가난에 대한 인식, 또 가난한 이들 자신의 가난에 대한 인식 안에서도 그런 기미가 엿보일 때가 있다.

고씨와 별로 다르지 않을 사연을 지닌 수많은 죽음들이 아마 그렇게 덮이고 지워지고 잊혀져 왔을 것이다. 그들의 빈자리는 금세 누군가에 의해 채워져 아무 일 없었던 듯 평범한 하루가, 어쩌면 더 엄혹한 나날들이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고씨처럼 막막한 현실에 짓눌린 누군가가 또 어딘가에서 모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활고를 못 이겨 세 모녀가 함께 목숨을 끊은 것도 불과 한 달여 전이었다. 비극은 그렇게 일상이 된다.

한 사회학자와의 대담에서 사회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자본주의가 노동 착취로 이윤을 추구하던 '생산자 사회'에서 소비 욕망을 착취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소비자 사회'로 이동한 뒤 가난을 범죄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했다. 즉 구매력 없는 '최하층계급'은 소비자사회의 잉여여서,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배제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가난한 자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이란, 그러므로 , 소비자 사회의 결함 있는 소비자들을 '사회의 정상적인 부분' 안으로 들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밖으로 내몰기 위한 도구"라고 썼다.(에서.)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바우만의 통찰이 전형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사회 가운데 하나이고, 고씨의 죽음과 그 이후는 그의 진실을 지탱하는 참혹한, 하지만 흔한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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