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 넥타이에 분홍색 셔츠를 입은 국회의원들이 스튜디오에 나와 신변잡기를 소재로 입담을 펼치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 풍선을 터뜨리거나 최신 유행하는 걸 그룹의 춤을 열심히 흉내 낸다. (JTBC 적과의 동침)
# 전ㆍ현직 정치인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유럽의 고산지대까지 가서 폐가에서 하루 버티기 등 각종 미션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다투거나 펑펑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다. (SBS 최후의 권력)
'누이(정치인)좋고 매부(방송사)좋은' 정치예능
최근 들어 케이블 방송은 정치와 예능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이 대세다. 이른바 정치예능의 대표주자로는 jtbc의 '썰전'을 꼽을 수 있다. 개그맨 김구라와 강용석 전 의원, 이철희 정치평론가 세 사람이 한 주를 달궜던 시사 이슈를 선정해 난상토론을 벌이는 형태다. tvN의'쿨하게 까는 하이브리드 정당'(쿨까당)의 경우는 매주 특정한 주제를 던져 주고 패널로 나온 정치인들이 찬반을 통해 법안 발의를 결정하는 포맷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지금은 종영된 jtbc의 '적과의 동침'의 경우 '정치 버라이어티 예능'이란 타이틀을 전면에 내걸고 짝을 이룬 여야 의원들을 출연시켜 게임 대결을 펼쳤고, tvN의 SNL 코리아 '위크엔드 업데이트' 코너는 신랄한 정치풍자로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정치예능이 득세하는 이유는 정치권과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예능 출연만한 게 없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대권주자들이 앞다퉈 SBS 예능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것도 친근하고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대중들과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정치예능 방송에 출연했던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아무리 지역구를 열심히 돌아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예능 프로에 한번 전파를 타니까 확실히 아는 척 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 씁쓸해 했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으로 방송 지형이 바뀌면서 정치예능이 더욱 범람하는 양상이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금까지 미개척지로 남아있던 정치 영역이 특화된 콘텐츠로 부상한 것이다. 정치인의 경우 몸값 높은 연예인과 달리 출연료 없이도 모실 수 있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제작비 절감 측면에서도 매력적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최근 시청자들은 단순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고 웃음을 찾지 않는다. 정보성을 가미한 교양 예능 프로그램이나 관찰 예능이 각광받다 보니 자연스레 정치예능에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중의 눈길은 잡았지만 정치 희화화 등 문제점 수두룩
정치예능이 기여한 바로는 평소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중의 눈길을 정치 이슈로 돌리게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하는 정치뉴스는 딱딱하고 어려워 채널을 돌리기 마련인데 정치 예능은 상대적으로 손 쉽게 정치 이슈를 전달 받을 수 있고 어디 가서 또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며 시청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예능이 정치를 희화화시키고 이미지 정치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에 대해 관심은 촉발시킬 수 있지만 수박겉핥기 식으로 정치 이슈를 소개하다 보니 정치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예능화된 정치프로는 굉장히 표피적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들은 그 동안 모르던 정보를 알았다는 수준에서 안도하고, 더 이상 문제를 파고들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슈를 확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자질 문제도 논란거리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행자나 출연자들이 자극적 표현과 논리를 동원하며 이분법적으로 편을 가르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인들 역시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해 의정활동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적과의 동침'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는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를 고리로 야당 대표가 천막당사를 치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벌일 때였지만 여야 의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송에 출연해 논란을 빚었다. 당장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여의도에선 싸우고 방송에선 웃고 떠드냐"는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예능 영역의 하나로 정치 이슈를 너저분한 흥미거리로 전락시키다 보니 정치 이슈의 본질을 호도하는 우를 범하는 등 아직까지는 부정적 측면이 더 강한 것 같다"며 "좀 더 책임감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정소은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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