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현대카드 스타일'로 변신한다.
우선 제주 전역의 버스정류장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 제주 전역 2,500여개의 버스정류장이 현대카드가 디자인한 표지판과 벤치 등으로 새 단장한다. 이 작업은 제주특별자치도의 부탁으로 시작돼 제주 고유 대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현대카드는 2010년 도보여행코스인 제주 올레의 이정표와 기념품 간세인형을 디자인해주면서 제주와 첫 인연을 맺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작은 섬을 통째로 디자인하기도 한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5월 제주특별자치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를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섬으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까지 지역시설(부두, 어업센터, 주민센터 등)을 재정비하고 돌길을 살리고, 폐가를 별 관측소나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재활용하는 등 섬 디자인의 총괄을 맡는다.
신용카드로 시작한 디자인 실험이 택시, 휴대폰 등 다른 제품개발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지역개발로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이쯤 되면 카드사에서 디자인 회사로 업종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사실 현대카드가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을 해주고 얻는 경제적인 수익은 없다. 제품판매 수익의 일정부분을 받거나 혹은 디자인컨설팅비도 없다. 그렇다고 사회공헌 차원으로 여기기에는 쏟는 노력이 어마어마하다. 현대카드는 금융회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별도의 디자인실을 꾸리고 35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특허청 등록 디자인 관련 특허만 81건. 진행 중인 디자인 작업만도 얼추 10개가 넘는다.
현대카드의 유별난 디자인 사랑은 200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업계 후발주자였던 현대카드는 다른 회사와 차별화할 만한 경쟁무기를 찾아야 했다. 정태영 사장은 2003년 취임과 동시에 디자인실을 만들고 '예쁜 신용카드를 만들어라'고 주문했다. 신용카드라고는 금ㆍ은색뿐이던 시절 현대카드는 알록달록하고, 형태나 소재가 다른 카드를 내놨다. 고유서체도 개발했다. 정태영 사장은 최근 "카드 디자인에서부터 기업이미지(CI)까지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부탁했는데 당시 디자이너가 서체개발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며 "지나고 보니 서체개발은 현대카드 CI 체계정립 등에 많은 근간을 세워줬다"고 회고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카드가 카드 디자인에 변화를 주면서 어떤 신용카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고객의 성향이나 취향이 규정되는 개념이 처음으로 생겼다고 평가한다. 디자인을 경쟁무기로 업계 꼴찌였던 현대카드는 진출 2년 만에 업계 2위로 뛰어올랐고, 디자인 마케팅의 성공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앞으로는 삶의 변화를 이끄는 현대카드의 디자인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카드는 지난 10년간 디자인이 타사와의 차별화 전략이었다면 앞으로는 더 나은 삶을 디자인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실장은 "성과가 알려지면서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 의뢰가 들어오는데, 그 중 디자인을 통해 낡은 통념들을 깰 수 있는 작업 위주로 선별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지난해 주방용품을 새롭게 디자인한 '오이스터' 프로젝트는 여성 전유물로 여겨졌던 주방용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 남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상품을 출시하는 작업이었다. 성별 구분이 없는 굴이라고 프로젝트명을 정한 것도 그 이유다. 빨간색 일색이었던 고무장갑은 남색과 베이지색 등으로 재탄생 했고, 꽃무늬나 레이스 등 여성성이 강조됐던 앞치마에서는 무늬가 없어졌다. 이 실장은 "현대카드가 디자인했구나 자랑하려는 작업이 아니다"라며 "남성들도 주방용품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소비자의 사용환경을 배려한 디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오이스터' 제품들은 월 매출이 3억원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 5월 선보인 '마이택시'는 '택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운전자 중심에서 탈피해 승객 중심으로 디자인됐다. '택시를 편하게 좀 타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탄생한 '마이택시'는 경차를 개조해 이용빈도가 낮은 조수석을 떼내고 대신 짐칸을 넓혔다. 친환경 연료인 전기로 충전한다. 택시 뒷면에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해 자전거 이용자들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택시 납치 사고 등 잠재적인 위험을 줄이기 위해 IT기술을 접목했다. 운전자 좌석 뒤에 붙어 있는 화면에 택시요금, 이동경로, 온도조절, 볼륨조절, 택시운전사 정보 등을 다국어로 지원, 볼 수 있도록 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휴대폰 개발업체 팬텍과의 협업으로 휴대폰도 디자인한다. 이정원 실장은 "단순히 1차원적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가져오고, 생활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디자인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동시에 공간을 바꾸는 활동도 두드러진다. 디자인을 삶 전반에 침투시키려는 의도다. 이달 말 서울 청담동 여행도서관 개관을 시작으로 강원 평창군 봉평면 전통시장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현대카드 디자인의 산실인 디자인실도 6월 변신한다. 이 실장은 "디자인이 단순히 카드회사의 마케팅 차원을 뛰어넘어 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더 나은 삶을 제안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이는 기업이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다"라고 강조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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