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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 같거나 엉뚱하거나

입력
2014.04.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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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문화재청장으로 있던 2007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프랑스 르와르 강변이나 미국 롱아일랜드의 별장 등은 건축 당시 모두 호화 건물이었지만 후대에는 내셔널트러스트 재산이 되거나 미술관, 호텔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호화 건축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잘 알고 있을 그가 조심스럽게 이 말을 꺼낸 것은 요컨대 최고의 기술과 인력, 재료를 동원해 정성껏 건축을 하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좋은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의 말은 그래서 호화 건축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건축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이자는 뜻이었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그의 말은 대체로 타당하다. 실제로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유형의 대상이 바로 건축물이다. 특히 문화권이 다른 국가의 건축물은, 여행자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그와 관련한 호기심을 즉석에서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후대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축은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중세 유럽의 교회, 중국의 만리장성, 이슬람이나 불교 사원처럼 대개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장식이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건축 과정에 정치ㆍ경제적 권력 관계나 종교의 강요 따위가 반영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노동을 강요당한 약자들의 피울음이 옛 건축물에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겉모습만 보고 감탄할 게 아니라 그런 이면까지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건축에 강제, 강요, 회유, 현혹이 사라진 시대다. 훨씬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아름다운 건축이 탄생할 기반이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마침 한국은 언제부턴지 개발이 일상화하면서 건축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건축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미적 감각도, 역사성과 삶의 자취도 살리지 못한 건축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건축의 상징인 아파트는 비록 그 모양이 성냥갑 같고 각자의 색깔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획일적이라 해도, 좀 더 넓고 여유 있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그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건축조차 개성이 없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가령 서울 도심의 거대한 상업 건물들 대부분은 날카로운 직선들이 만나 이루는 거대한 직육면체 형태로 거의 통일돼 있다. 개성과 색깔을 강조하는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다. 간혹 부분적으로 변화를 준 건물이 있지만 크게 보면 같은 모양이다. 상당수 공공 건물도 비슷하다. 관공서는 물론이거니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건물을 짓는 대학에서도 비슷비슷한 닮음 꼴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 건축 기법이나 재질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큰 의미를 둘 정도는 아니다.

획일성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획일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의 결과가 엉뚱하다는 평을 받는다면 그 또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최근 문을 연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특이한 모양 때문에 눈길을 끌고 있지만 동대문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무시하고 그곳의 기억마저 제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시청사도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돌로 지은 기존 건물과 유리로 된 신청사가 따로 놀며 화합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같은 엉뚱함은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 채 홀로 도드라지려 한다는 점에서 위압적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물론 이런 모습이 한국 건축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좀 더 편안하고 아름답고 소박하고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을 하려는 노력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획일적이거나 엉뚱한 건축 때문에 빛을 잃고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개성이 너무 없거나 반대로 개성이 너무 많은 건축이 한국 사회의 거울일 수 있다는 점에서 후손들이 지금 이 시대와, 이 시대의 건축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마음이 쓰인다.

박광희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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