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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4월 5일] 더 깊이 더 멀리 보는 신문

입력
2014.04.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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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의 거인' 김우창 교수가 최근에 낸 책의 제목은 이다. 사유 자체가 도저한 데다 문장도 난해해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특히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표현도 많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차피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독자의 능력 미달, 이해 부족 탓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깊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바로 보려면 깊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문장 몇 개를 인용한다. '오늘의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것이 크게 보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다.', '오늘의 삶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것은 깊이에 대한 감각이다.', '깊은 생각은 세계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현상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는 생각을 말한다.', '깊이는 없고 너비만 있는 세계는 거짓 세계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지금 너비만 있고 깊이가 없다. 많은 것들이 날것인 채 떠다니고 부박(浮薄)한 사고가 사회 발전과 인간의 성숙을 방해한다. 깊이를 회복하고 확보함으로써 우리는 인간과 세계의 전체상을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깊이는 곧 거리라는 김 교수의 말을 원용하면 깊이는 곧 '멀리'인 것이고, 깊이 보는 일은 멀리 내다보는 일이다.

깊이, 멀리 보아야 하는 게 어디 학문뿐일까. 세상과 인간에 대해 객관적인 눈으로 지켜보고 전달해야 하는 언론에도 당연히 해당되는 일이다. 다시 김 교수를 인용하면 '자연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그대로 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원래 이처럼 어려운데, 절체절명의 존망 위기에 처한 종이신문에게는 더 어려운 과제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선고를 받은 환자가 대체 무엇인들 제대로 볼 수 있겠는가.

해마다 4월 7일 신문의 날이 오면 표어가 발표된다. 표어에는 시대상과 시대정신이 담긴다. 국가 발전이 강조되던 1970년의 표어는 '나라와 겨레와 함께 뻗는 신문'이었고, 세계화를 지향하던 1995년의 표어는 '세계를 읽는 신문 미래를 보는 국민'이었다. 올해 당선작은 '시대가 빨라질 때 신문은 깊어집니다'이다. 역대 어느 표어보다 더 선명하게 신문이 지향할 바를 알려주고 있다.

118년 전인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은 창간호 논설을 통해 "남녀노소, 상하귀천 간에 우리 신문을 보면 새 지식과 새 학문이 생길 걸 미리 아노라."라고 말했다. 신문은 처음부터 '새 지식의 보고(寶庫)'였다. 신문 독자들이 다른 매체에 의존하는 사람들보다 지식이 많다는 것, 신문이 통합적 사고를 길러준다는 것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이제 그 역할 수행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속보보다는 깊이 있는 분석, 이것과 저것의 관계를 엮어 보여주는 해설, 공정하고 분명한 공론 제시가 주력해야 할 일이다. 인터넷과 SNS가 알려주는 것은 소식이지만 신문이 전해주는 것은 지식이다. 그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사회와 국민의 발전을 위해 신문은 깊어지고 더 멀리 보아야 한다.

워싱턴포스트(WP)의 새 주인이 된 아마존 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종이신문은 미래에 '귀중품(Luxury Item)'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귀중품이 되려면 깊이와 품위를 갖춰야 한다. 다른 매체들이 배낭여행을 안내할 때 종이신문은 명품여행을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학자들이 "더 이상 매스 미디어는 없다."고 말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매스 미디어 대신 이제는 '딥 미디어(deep media)'가 필요하다. '더 깊이 더 멀리'를 구현할 제작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고 취재·보도방식을 바꾸는 일도 긴요하다. 그러나 신문은 결국 사람 장사다. 사람에게 투자해 깊이 있고 멀리 내다보는 글을 많이 싣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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