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춘분 지나도록 봄의 기운은커녕 기특하게 겨울 견뎌내고 솜털 벗어내며 숨고르기 하는 꽃눈들에게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지난 한 달 해미의 작업실 수연재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열흘 남짓이다. 다행히 여기에서의 열흘은 서울에서 보내는 스무날보다 집중도와 생산성이 높아서 새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안개 짙게 드리운 봄날 아침, 손으로 돌리는 커피 그라인더를 고집하는 까닭은 커피콩이 으깨지며 지르는 '비명'이 살가워서, 그 알싸한 향이 방안 가득히 채워지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내 삶은 커피콩만큼이나 야물게 여물었는지, 그것만큼이나 제대로 향을 내는지 생각하면 이미 커피를 마시기 전부터 각성이 된다. 커피를 내린 김에 가벼운 아침 식사를 꾸려 책상에 앉아 창밖 내다보며 소박한 아침을 맞는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멀리 가야산 자락은커녕 늘 바탕화면처럼 자리 잡은 작은 산의 연봉들도 보이지 않지만 다행히 베란다 앞의 논 뒤켠의 솔밭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 그 소나무들은 별로 눈길 끌지 못했지만, 그 녀석들만 보이니 아무래도 초점이 거기에 모아진다. 제 스스로 초점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연이 다른 것 가려줘야 겨우 그걸 알아채는 미욱한 나는 소나무들과 눈 맞춤으로 아침인사를 나눈다.
오늘 배운 것이 내일 삶으로 이어지는지 늘 두렵다. 그저 이것저것 훑어본 지식 나부랭이들 모아 떠들어대고 끄적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마치 새벽안개 속 방향도 가늠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삶으로 이어지고 내재화되어 체화되는 과정을 생략하며 지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면 낯이 화끈거릴 게 많다. 굳어진 심장으로 살면서 입으로는 마치 득도라도 한 도인인 양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안개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말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부지런한 태양의 시간표에 맞기면 금세 윤곽이나마 짚어볼 수 있는 걸 내친걸음이라며 서둘면서 허둥대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서서히 걷히는 안개의 속도를 느껴본다. 생각의 안개, 행동의 안개, 사랑의 안개, 삶의 안개 속에서 잠시 기다리지 못하고 허둥댔을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본다. 오늘이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늙은 날이지만 살아갈 날들 가운데는 가장 젊은 날인데도 무에 그리 급한지 서둘고 내달리다가 혹여 엉뚱한 길에 접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하는데도 내친걸음이라고 이 길 저 길 들춰보는 습성을 온전히 버리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안개에 싸인 느낌이다. 늘 그랬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느 길로 갈지도 찾지 못하는 안개 속이다. 그런데도 제 길만 옳다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자들만 설쳐댄다. 예상한 날보다 일찍 꽃이 폈다고 자연을 탓하는 미욱함이 도처에서 들린다. 정해진 축제일이 어그러지는 게 당혹스럽기는 할 게다. 그러나 자연에 사람이 맞춰야지 자연이 사람에 맞추는 게 아니다. 이제는 그것조차 무시할 만큼 오만해진 건 아닌지. 내 잣대만 들이대고 재단하려는 고약한 습속이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걸핏하면 종북 운운하는 자들이 설쳐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을 만큼 오만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봄날.
사람이 공간의 지배를 온전히 받지는 않더라도 제법 영향을 받기를 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수연재에 돌아와서야 겨우 깨닫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이제 오늘이면 그 수연재를 잠시 비워두고 다시 도회로 돌아가 허둥대며 살 것이다.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농부에게서 배우는 게 많다. 겨우내 얼었던 논을 이른 새벽 채 안개 걷히기 전부터 부지런히 갈아엎는 농부는 제 논의 크기와 깊이를 제 손바닥 보듯 체득하고 있기에 아무 탈 없이 저리도 열심히 트랙터를 몰 것이다. 저 농부의 논만큼이라도 제대로 생각과 삶의 마당을 마련해야 하겠다. 그래야 혼 빼는 도회에서도 헤매지 않고 제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니.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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