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차우진의 뮤직 스크랩] 흐릿해지는 트로트의 추억, 붙잡는 것만이 정답일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차우진의 뮤직 스크랩] 흐릿해지는 트로트의 추억, 붙잡는 것만이 정답일까

입력
2014.04.04 11:02
0 0

엠넷의 '트로트 엑스'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슈퍼스타 K' 시즌 2, 3, 4를 찍고 2PM이 출연했던 '와일드 바니' 등을 연출한 김태은 PD가 새롭게 맡은 프로그램이다. 트로트의 부흥과 재해석을 모토로 출발한 프로그램답게 출연자의 면모도 고등학생부터 트로트계의 숨은 진주까지 다채롭다. 인터넷 유행어로 소위 '병맛' 감수성에 맞춘 파격적인 예고편으로 화제를 얻기도 했다. 이제 막 시작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는 꽤 다양한 관점의 분석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나도 '트로트 엑스'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도대체 트로트는 어떻게 몰락했고 엠넷은 어째서 트로트의 부흥을 겨냥하는 프로그램을 지금 만드는 걸까.

흔히 '성인가요'라 불리는 트로트는 중장년층, 그러니까 30대 중반 이후의 계층이 소비하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조는 의외로 단단해서 지난 시기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아이돌 음악이 10대에서 20, 30대로 시장을 확장하며 가요 산업의 헤게모니를 차지한 것과 달리 트로트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실패했다. 물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신세대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젊은 피를 수혈하고 새로운 감각을 접목한 음악들이 대거 나왔지만 장윤정과 박현빈 외에 이렇다 할 스타가 탄생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행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의 제한된 범위를 몇 명이 독점하다시피 한 구조가 반세기 가까이 깨지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남진-나훈아, 송대관-태진아, 장윤정-박현빈으로 이어지는 이 독과점 형태가 시장을 오히려 좁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구조에서 트로트는 생존을 위해 보다 직접적이고 쾌락적인 음악에 가깝게 진화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듣도 보도 못한' 숱한 카세트테이프들, 이를테면 '섹시 트로트' 같은 것들이 곧 트로트 시장의 맨 얼굴인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의 몰락은 매체의 변화와도 관계가 깊다. 카세트테이프 중심의 제작방식은 저렴하고 손쉽게 음반을 만들 수 있게 했는데 소규모 수공업 공장이나 자동차로 일하는 계층들이 접근하기에도 쉬웠다. 하지만 음악 매체가 CD에서 MP3로 급전환하면서 트로트는 여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적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 하면 중장년층에게 MP3는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로트의 몰락은 음악 산업 구조의 재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엠넷은 왜 트로트를 부흥시키겠다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까. 최근 '슈퍼스타 K' 시리즈의 부진과 '보이스 오브 코리아' 같은 신규 프로그램의 성과를 보면 엠넷의 입장에선 새로운 포맷의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어디서도 시도하지 않은 것. 이때 트로트는 인터넷의 유머 코드와 교차하며 '병맛'이란 키워드로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트로트 엑스'는 그래서 곳곳에 '엠넷다운' 인상을 남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 출연자들의 숨겨진 사연, 도발적인 도전자와 냉정한 심사위원 등 내용과 형식에서 익숙한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면모를 그대로 가져온다. 하지만 그 면모가 식상한 것이 사실이다. '트로트 엑스'가 예고편으로 화제가 됐던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 예고편은 흔히 '짤방'이라 불리는 인터넷 유머 동영상과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예고편의 관심이 첫 회로 이어졌지만 그 이상의 흥미와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아무래도 생각만큼 트로트의 스타일이 다양하지 않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새로운 트로트로 각광받고 있는 '섹시 트로트'나 '신세대 트로트' 같은 형식은 오히려 대중성과 거리가 멀고 방송에서 재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2013년에 30, 40대가 된 세대들은 트로트보다는 90년대의 아이돌 팝이나 중간계 가요가 더 가까운 첫 번째 세대다. 추억의 90년대 리듬&블루스 가요를 소비하는 이들이 부모 세대가 즐겨 듣는 트로트를 굳이 소비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트로트 엑스'는 딜레마에 빠진다. 아이돌이 출연하고 전혀 트로트 같지 않은 노래가 '퓨전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생각해보면 오렌지 캬라멜이나 크레용 팝의 신곡이 오히려 트로트에 가깝다. 이런 시대에 '트로트 엑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사라지는 것을 그저 보내는 것이 더 적합한 일이 아닐까. 금요일 밤에 TV 앞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며 다른 채널을 볼까 말까 하면서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게 무리수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