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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철학자 '분배·인정' 치열한 논쟁… 정의론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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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철학자 '분배·인정' 치열한 논쟁… 정의론 모색

입력
2014.04.0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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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認定ㆍanerkennung)이 시대의 핵심어로 자리잡았다. 여성의 돌봄 노동이든, 동성애 결혼이든, 아니면 프랑스 이슬람교인들의 히잡 착용 요구든, 차이를 인정해달라는 '인정투쟁'이 전지구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인정을 강조하는 것이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 같은 분배(umverteilung) 정의에 대한 요구를 간과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구조화한 경제적 불평등이 상존하는데 개개인의 정체성과 특수성에 관심을 돌리면 큰 문제를 놓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 논란의 중심에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와 독일 신헤겔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있다. 프레이저가 1996년 스탠퍼드대학에서 행한 '태너 강연'을 호네트가 비판하면서 시작한 분배와 인정, 나아가 정의에 관한 치열한 논전을 엮은 것이 다.

존 롤스의 (1971)에서 마이클 샌델의 (2009)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 대립축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롤스나 로널드 드워킨 등의 자유주의적 관점은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고 분배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찰스 테일러나 샌델로 대변되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좋은 삶을 강조하면서 공동선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두 정의론은 오랫동안 대립해왔지만 이론적 논의로 끝났다. 분배 정의론은 현실과 무관한 초역사적 모델에 머물렀고, 공동체주의는 사회통합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개인을 무시하는 현실긍정론에 그쳤기 때문이다.

프레이저와 호네트의 는 분배와 인정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담론을 넘어서는 '현실과 고군분투하는' 정의론을 제시한다. 즉 공허한 도덕적 수사로서의 정의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규범적 대안과 그 방향을 위한 사회비판적 정의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두 철학자는 인정과 분배를 양자택일의 문제로 여기거나 분배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경제주의적 시각은 잘못이라는 공통 인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호네트는 분배를 파생적인 것으로 다루면서 인정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근본적 도덕 범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는 분배라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인정투쟁의 하위 변종으로 재해석한다. 반면 프레이저는 분배가 인정에 포섭될 수 있다는 주장을 부정한다. 예컨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면서 불평등 분배로 차별 받는 동시에 외모로 인해 무시당하는 이중적 불의를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레이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분배가 없이는 그 어떤 인정도 없고 인정이 없이는 그 어떤 분배도 없다"며 분배와 인정을 통합하는 '관점적 2원론'을 제시한다.

반면 호네트는 인정 개념을 통한 '규범적 1원론'을 주장한다. 경제적 불평등을 단지 경제 구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며, 더욱 심층적 차원에서 경제 구조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인정 질서에 주목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정의 역사적 분화(사랑, 권리, 업적)가 정치적으로 제도화되고 경제적으로 왜곡돼 표현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현재 사회에서는 사랑, 권리 동등성, 업적 정의라는 3가지 원칙을 둘러싼 다양한 유형의 인정투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호네트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동등성(같음)과 특수성(다름)을 제도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포함의 범위가 확대되고 개성이 신장되는 것을 한 사회의 도덕적 진보"라고 규정한다. 물론 이런 진보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한 사람들의 인정투쟁을 통해 추동된다. 이 때 인정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 자신들의 생활조건의 특수성이나 개성에 호소하며 차이(업적)에 대한 인정을 요구할 수 있고,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를 보장하는 동등성(권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할 수 있다.

결국 분배와 인정의 관계에 대한 두 철학자의 논쟁은 현대 자본주의에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자본주의는 체계화된 경제 법칙에 의해 조절되는 자기조정 시장인지(프레이저), 아니면 규범적으로 구조화된 사회 질서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사회적 시장인지(호네트)라는.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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