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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한 여인, 도려낼 수는 없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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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의 한 여인, 도려낼 수는 없는 상처

입력
2014.04.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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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길 택한 두 형제가 버텨 내야 하는 상처와 삶…제목 '저지대' 英 식민지였던 인도 슬픈 운명 상징하는 공간극단 치닫지 않는 우아한 소설 작년 맨부커상 최종심 올라

19세기 플로베르 이후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미 시간이었던 바, 70년에 걸친 한 가문의 비극을 그린 이 소설을 두고 같은 명제를 반복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일 테다. 그러나 이 소설 말미에서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먹었다면, 그것은 분명 시간 때문이다. 우리는 소설이 아니고서는 누군가의 긴 생애를,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그 많은 나날들의 환희와 고통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을-설령 자기 자신의 삶이라 할지라도- 결코 경험하지 못한다. 역사와 사회와 인간 사이의 관계가 한 인간에게 가하는 무수한 작용과 반작용들. 그게 수고롭지만 벅찬, 대하소설을 읽는 일의 보람이다.

줌파 라히리(47)의 네 번째 책 는 수많은 주제들을 중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버림받는다는 것의 상처를 다룬 소설이다. 첫 책 으로 오헨리문학상과 펜/헤밍웨이상, 퓰리처상을 거머쥐며 단숨에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그는 이 두 번째 장편소설에서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던 솜씨로 역사와 정치를 서사의 본령에 과감하게 끌고 들어온다. 소설 속에서 하나의 선택은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버려야 하는 대가를 요구하고, 버림받은 이의 상처는 저지대에 고여 썩어가는 물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소설 속에서 내내 출렁거린다.

소설의 주인공은 두 형제와 그 둘 모두의 아내가 된 한 여인이다. 1940년대 인도 캘커타의 중산층 집안에서 15개월 터울로 태어난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은 쌍둥이처럼 강한 결속 속에서 자라지만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형 수바시가 차분하고 사려 깊은 반면 동생 우다얀은 반항적이고 모험심이 강하다. "부모님은 수바시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게 그의 역할이 되었다. 부모님을 놀라게 하거나 감탄케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다얀의 몫이었다."

총명한 두 아들은 각기 지역 최고 대학에 입학해 부모를 뿌듯하게 하지만, 동생 우다얀은 학업보다는 마오쩌둥주의에 더 빠져든다. 수탈 당하는 인도 농민들의 현실에 분개해 매판자본을 타도하려는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우다얀은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게 돼"라며 형의 참여를 종용하지만, 형 수바시는 계획대로 미국 유학을 떠난다. 유학 환송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형제의 슬픈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아 대정부 무력투쟁을 펼치던 우다얀은 경찰에 총살당하고, 수바시는 동생의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책임지기 위해 제수를 미국으로 데려와 결혼한다.

다양한 악기의 주자들이 차례로 등장해 장중하고 우아한 선율을 펼쳐 보이듯 소설은 화자의 교체를 통해 서사의 구조를 다면적으로 구축해간다. 우다얀의 아내에서 수바시의 아내가 된 가우리는 수바시 덕분에 철학교수로 미국에서 새 삶을 살게 되지만 자신을 사회운동에 이용한 우다얀을 끝내 잊지 못해 수바시를 떠난다. 가우리의 딸 벨라는 자신과 (큰)아버지 수바시를 버리고 떠나 30년간이나 연락을 끊고 홀로 산 엄마 가우리를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 두 아들 모두의 아내가 돼 두 아들을 모두 빼앗아간 며느리 가우리를 죽는 순간까지 못마땅하게 여긴 형제의 어머니, 우다얀의 대체재로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아가며 딸(조카) 벨라에게만 헌신해오다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가우리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수바시 모두 버림 받은 고통으로 회한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전면에 나서 저마다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이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고인 물 위로 부레옥잠이 떠다니는 상처의 저지대가 있다. 상처는 매립할 수는 있을지언정 제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식민제국 영국의 골프클럽과 가난한 인도인들의 촌락을 가르던 저지대는 경찰의 총부리를 피해 물 속에 숨어 있던 우다얀이 아내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던 참혹한 사건으로 인해 두 형제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이후의 비극적 삶을 가르는 상징적 공간이 됐다. 소설의 마지막은 저지대의 물 속에 숨어 있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우다얀의 마지막 의식을 그린다. 아내의 환멸감 어린 눈빛을 보며 죽어가는 우다얀이 떠오른 것은 극장에서의 첫 데이트였다. 소설의 초반에 이미 한 차례 묘사된 바 있는, 가우리의 얼굴로 내리쬐는 햇살을 가리기 위해 우다얀이 둘 사이에 만든 손차양. 다정하고 범상해서 더더욱 사무치는 과거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였다.

격정의 와중에도 격조를 잃지 않고, 분노의 한복판에서도 분별을 놓지 않는 이 우아한 소설은 지난해 맨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데 이어 현재 영국의 베일리스여성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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