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근대 사회의 기반 대부분이 1815~1830년 15년 동안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
영국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폴 존슨은 서문에서부터 역사학계의 보편적 의견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분명히 밝힌다. 그는 1789년 프랑스혁명과 낡은 체제의 청산을 근대의 출발점으로 보는 역사학계의 믿음과 달리 근대의 탄생은 19세기 초반 15년 간에 대부분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인물로 20세기 역사에 접근한 등 전작을 통해 딱딱한 현대사를 색채감 있는 드라마로 풀어내는 장기를 선보였던 저자는 15년 간의 이야기를 1,700여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확장했다. 1991년 출간된 책으로 최근 한국어판이 나왔다.
저자가 1815∼1830년에 주목한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 뒤에 찾아 온 안정에 대한 열망이야 말로 산업과 과학, 문화의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1780년대가 현대성을 잉태한 시대인 것은 맞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현대성의 실질적인 탄생을 늦췄다고 지적한다. 금융, 경영, 과학, 기술 등 새로운 재원이 건설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평화의 시대라야 비로소 사회 변혁이 전면적으로 일어날 수 있고, 실제 전쟁이 끝난 1815년부터 영국과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는 설명이다.
책에 따르면 이 15년은 여러 변화와 시도가 있던 뜨거운 시기다. 도로를 개량하고 우편제도를 정비하는 등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로스차일드 형제가 유럽 각국을 연결하는 금융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밀리언셀러 작가가 출현하고 출판업이 번창했으며 고도의 과학 지식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인 근대의 도래를 과연 15년이라는 특정 시기의 사회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뻔한 연대기적 서술 대신 당시 사람들의 편지와 일기, 개인 문서, 신문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풀어낸 생활사의 다채로운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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