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과 탄력 개선에 인간성장호르몬(hGH)과 상피세포성장인자(EGF)가 좋은 건 알겠는데 이걸 어떻게 피부 속 깊숙이 넣을 수 있을까?'
에스티로더, 로레알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도 상용화하지 못한 LG생활건강의 독자기술 '트랜스킨'(Transkin)의 탄생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 기술은 보습제와 같은 화장품 성분은 피부표면에 두고, 성장인자 성분만 선택적으로 피부 속 깊이 침투시키는 신기술이다.
지난해 8월 트랜스킨 기술을 적용해 업그레이드 한 LG생활건강의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오휘 더 퍼스트'는 고가 화장품들이 부진을 겪는 가운데, 8개월 동안 350억원 어치가 팔리며 선전하고 있다. 특히 35만원 짜리 앰플(고농축 영양성분)은 상당한 고가임에도 3개월 만에 1만개가 팔리는 돌풍을 일으켰다.
물론 개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트랜스킨 기술 개발을 주도한 강내규(44ㆍ사진) LG생활건강 연구위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크기가 큰 성장인자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전체 피부의 1%도 되지 않는다. 길 자체도 미로와 같은 복잡한 구조라, 성장인자의 피부 흡수를 도와 줄'길 안내자'가 필요했는데 동물실험을 할 수 없어 막막했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은 2012년 공식적으로 쥐 등을 이용한 동물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돼지껍데기였다. 회식자리에서 돼지 껍데기를 먹다가 '사람 피부와 가장 유사한 돼지 껍질(피부)을 이용하면 어떨까?'하고 떠올린 것. 곧바로 식용으로 쓰이는 죽은 돼지의 피부를 일정한 두께로 잘라 실험에 들어갔고, 돼지 피부의 각질층을 통과하는 최적의 길 안내자 성분을 찾아냈다.
알고보니 1분에 1개씩 팔린다는 '오휘 셀파워 넘버원 에센스'(일명'김태희 동안'에센스)도 강 위원의 작품이었다. 2000년대 초 국내 최초 주름기능성 화장품으로 사랑 받았던 이자녹스 링클디클라인 개발에도 참여했다. 손 대는 것마다 '대박'을 낸 셈이다.
그는 "집 화장대에는 화장품 정품은 하나도 없고 샘플 용기들만 가득하다. 같이 사는 장모님과 아내가 직접 써보고 쓴 소리를 많이 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넘버원 에센스의 경우 "너무 바른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 별로다"는 장모님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강 위원은 1997년 LG생활건강에 입사해 17년째 화장품 개발에만 매달려왔다. 지난 달에는 트랜스킨기술을 개발한 공로을 인정 받아 LG계열사 가운데 화장품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임원급 연봉과 대우를 받는 연구위원으로 위촉됐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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