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직원은 1.2배, 사장은 4배, 전무 3배, 상무 2배.'
금융권에서 임ㆍ직원간 퇴직금 누진율 차이다. 퇴직금 산정의 결정적 요소인 누진율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일반 직원이 4배 가까이 격차가 나는 셈이다. 박종원 전 코리안리 사장의 경우 이런 셈법을 이용, 15년간 일하고 퇴직금으로 159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권 CEO들이 과도한 연봉에 이어 거액의 퇴직금까지 무분별하게 챙기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금융사는 CEO나 임원에 대한 퇴직금에 대한 지급기준이 없거나 CEO의 영향권에 놓인 이사회에서 거액의 퇴직금 지급 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코리안리 사장이 받은 퇴직금 159억5,700만원은, 이 회사에서 평균 연봉(6,500만원)을 받는 직원이 한 푼도 안 쓰고 245년 동안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다. 이처럼 내 맘대로 퇴직금을 챙긴 CEO는 박 전 사장만이 아니다.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은 11년 근무하고 퇴직금 42억2,000만원을 받았다. 이는 직원에게는 누진율 1을 적용하는 것과 달리 사장은 4, 부회장은 4.5, 회장은 5를 적용해 가능했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임원으로 오래 근무하면 퇴직금이 말도 안되게 높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게 산출한 방식을 임원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인지는 이번 연봉공개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은행권 CEO는 대부분 직원과 비슷하게 매년 월 통상임금 정도를 퇴직금으로 쌓고 있지만 규정에도 없는 특별 퇴직금, 스톡옵션 등으로 퇴직금을 올려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퇴직금 규정에 없는데도, 특별 퇴직금으로 35억원을 챙겼고,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은 지난해 중도 사퇴하면서 급여와 상여금으로 5억7,300만원을 받았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은 퇴직금은 받지 않았으나 수십억원대 스톡그랜트(주식성과급)를 부여받았다.
지난해 금융권 최고 연봉을 기록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연봉만이 아니라 퇴직금도 논란이 일고 있다. 하 행장의 지난해 연봉은 기본급여 7억원에 상여금(13억1,600만원), 이연지급보상(8억5,000만원), 복리(2,100만원) 등이 21억원이 넘었다. 과도한 연봉이란 여론이 거세지자, 씨티은행은 최근 감독당국에 행장 연봉을 30%정도 줄이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기본급 기준 30%를 삭감하겠다는 것인지, 상여금 등을 포함한 전체 연봉인지는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
그런데 하 회장은 퇴직할 때 역시 막대한 퇴직금을 챙기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씨티은행이 임원 퇴직금 산정방식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씨티은행 노조 관계자는 "지난달 주총에서 행장의 퇴직금 산정 기준이 최근 '퇴직 당시 기본급'에서 '가장 높았던 해의 기본급'으로 바뀌었다"며 "연봉이 당국 압박으로 줄어들 것에 대비해 이를 '과거 기준'으로 변경한 것을 보면 막대한 퇴직금도 미리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사 경영진의 퇴직금 규모가 도를 지나치자, 금융감독원은 임원 연봉 삭감에 이어 합리적인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강력히 지도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연봉공개를 통해 연봉뿐 아니라 퇴직금도 문제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현장검사를 통해 특별 퇴직금을 제한하고 퇴직금 누진율도 직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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