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가 누군지 몰랐다. '황제 노역' 분야 신기록(일당 5억원) 달성에 대한 예우와 호기심 차원의 관심이 전부였다. 감옥에서 억대 노역을 한 회장님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져도 그렇게 심드렁했던 내가 깜짝 놀라게 된 건 그가 거느렸다는 계열사 목록을 본 뒤다. 그는 나와 꽤 밀접한(?) 사이였던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지저분한 당신쯤이 적절하겠다.
녀석은 1년에 두세 번 나를 만날 때마다 사주 허재호 얘기를 꺼냈다. 제보 성격이 강했지만 막역한 사이인지라 나는 그냥 녀석의 넋두리 정도로 받아들였고, 설사 취재할 마음을 먹었더라도 결국 내 영역이 아니라는 둥 갖가지 자기변명으로 뭉갰을 게 뻔하다.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나 역시 이 사건의 방관자다.
녀석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내게 증언한 내용은 이렇다. 허재호의 특기는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뒤 다시 팔아먹는 것이다. 박스용 재생지를 만드는 대한페이퍼텍도 그렇게 인수했다. 직원이 20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지만 스스로 먹고 살만한 업체라고 했다.
허재호는 관련 사업에 문외한인 측근을 사장으로 내려 보냈다. 직원들은 분당 600~2,000바퀴 회전하고 온도가 200도까지 올라가는 위험천만 기계더미에서 12시간 근무, 12시간 휴식(맞교대)이라는 최악의 근로조건을 기꺼이 감수했다. 한 달에 이틀 쉬는 게 고작이었고, 명절 친지 방문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러나 보상은 터무니없었다. 당시 녀석의 시급은 4,000원 남짓. 직원들의 노력으로 회사가 흑자를 냈는데도 사실상 적자라며 성과급을 주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없다는 핑계로 관련 자료 공개도 거부했다. 심지어 경력과 신참 사이에 다른 연봉체계를 적용하는 수법으로 내부 이간질을 부추겼다. 임금 인상분 소급 포기각서도 쓰게 했다.
그렇게 치부한 돈은 밑 빠진 독인 조선소에 쏟아 부었다. 대한페이퍼텍은 허재호의 용돈벌이 창구고, 뉴질랜드에 거점을 만들어 회사 돈을 빼돌린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관련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검찰도 한통속이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녀석의 회사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녀석은 2010년 작업 중에 왼손 중지의 뼈가 끊어지고 약지는 거의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크레인에 손가락이 찍히는 그 순간에도 '내가 손을 빼면 제품이 상하는데'라고 생각했다는 녀석의 말에 나는 그저 "미련한 놈"이라고 응수했다. 그 해 3월 검찰은 허재호가 대한페이퍼텍 등에 재산상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고발된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직원들이 시급 4,000원에 몸까지 상하면서 회사를 살리겠다고 분투하는 동안 허재호는 해외에서 떵떵거리며 살다가 일당 5억짜리 쓰레기 분리수거로 모든 죄를 사함 받으려 한 셈이다. 녀석은 "호화생활, 황제노역에만 초점을 맞췄지, 그 사람 밑에서 고통 받은 노동자 얘기는 없더라"고 씁쓸해했다.
수백 억대 '유급(有給)징역'은 또 어떤가.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법정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2년 전 구속됐다가 얼마 전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각 300억원이 넘는 연봉을 기록했다. 직원들을 앞세워 "성과급은 재작년(구속 전)분"이라고 변명한 최 회장보다 200억원을 반납한 김 회장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부분의 시간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옥중 경영이라 하나 이런 황당한 거액 연봉을 납득할만한 상식이 내겐 없다. 사주의 비리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해당 그룹 직원들도 과연 수긍하고 있을까. 유전무죄에 더해 황제 노역, 유급 징역까지 버젓이 등장한 작금의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그 녀석은 사실 내 밑 친동생이다. 지난 설에도 아내와 아들만 우리 집에 보내고 연휴 내내 공장에서 일했다. 며칠 전 전화했을 땐 잠이 부족해 저녁밥도 못 먹고 출근했노라고 했다. 나는 그저 동생 다치지 말라고 기도만 한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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