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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유감

입력
2014.04.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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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단순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 세상은 두부 모 자르듯 간단하고 분명했다. 적과 아군은 위치와 생김새부터 달랐다. 스크럼 이쪽은 우리 편이었고 마주 보이는 저쪽의 무리는 적이었다. 자유로운 복장의 우리 편은 좋은 편이었고 투구 쓰고 방패든 채 칙칙한 보호복을 입고 오와 열이 정연하게 서 있는 저쪽은 단순히 나쁜 편을 넘어 반드시 박멸되어야 할 존재였다. 그래서 우리는 로봇과도 같은 그들에게 화염병과 보도블록을 집어 던지며 조금의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다. 악의 제국에 비수를 꽂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적은 너무도 또렷이 우리 앞에 있었기에 고민할 시간도 거리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통치가 얼마나 단순무식했는지 음악 레코드와 테이프의 말미에는 이른바 '건전가요'라는 것이 꼭 붙어 있었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건전가요란 그 이전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렇게 꼬박꼬박 의무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서정적인 음악에 몰입하다 보면 불쑥 군가 풍의 "백두산의 푸른 정기…"로 시작되는 ,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로 흥겹게 시작되는 등이 튀어나와 황당해지곤 했다. 저녁 5시면 가던 길 멈추고 부동자세로 꼿꼿이 서서 애국가에 맞춰 느릿느릿 내려지는 태극기를 지켜봐야 했고 매번 영화 시작할 때에도 애국가가 나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을 응시해야 했다. 마지막 영상에 새들이 갈대숲을 떠나 무더기로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서 황지우 시인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 읊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건전한 가요를 들으면 '건전한 사상'을 가질 것이고 애국가를 듣게 하면 애국자가 될 것이라는 사고는 자본주의 비판서와 마르크스 이론서 몇 권 읽으면 세상을 다 아는 것으로 여긴 386세대의 섣부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대학생들은 깨알같이 써진 '필독 도서목록'을 들고 다니며 책을 구했다. 어쩌다 판매 금지된 책을 구하는 날엔 보물을 얻은 것 같은 기쁨에 밤새워 밑줄 그으며 읽었다. SNS는커녕 인터넷조차 없었을 때이니 정보란 책과 신문, 입소문뿐이라 조악한 번역서나마 지적 갈증을 채워주는 생명수와도 같았다. 지금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난해한 경제학 이론서, 경제사 책들이 필독서였고 사회주의를 소개하는 철학 강의는 대강당에도 자리가 없었다. 대학생들은 여름방학이면 농촌봉사활동을 갔고 현실로 뛰어들기 위해 아예 공장노동자가 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혁명적 사고를 위해 당구와 같은 유흥도 자제되었고 사용하는 단어도 다분히 전투적인 것들로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그 이전 세대들이 제대한 후 학교에 돌아와서 만난 "당구도 못 치는 친구들"이라 표현한, 삶의 여유라곤 찾아보기 힘든 경직된 후배들이 그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경제는 호황이라 취업 걱정은 필요 없었고 무역회사, 투자사, 증권사 등에 인재가 몰렸으며 공무원, 교사는 인기 직종의 순위 근처에도 오르지 못했다. 세상은 엄혹했지만, 먹고 사는 것은 크게 걱정이 없는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모순적 상황이 이상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1980년대 회고담을 늘어놓은 것은 70년대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보낸, 이른바 7080 당시의 유행음악을 들려주는 TV 프로그램을 본 탓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챙겨 보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게 되니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불렸지만, 기성세대의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경멸하던 그래서 청산되어야 한다고 매도하던 노래들과 시대에의 불만을 대변하던 노래들이 뒤섞이고 7080임이 분명한 중년 남녀들이 즐겁게 듣는 것이 아닌가. 음악에 상하나 등급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젊었던 시절은 다 좋은 것인지, 싫어하던 것도 나이 먹으니 포용할 수 있게 된 것인지 아니면 옅은 공부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임을 안 것인지,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를 논리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애당초 잘못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게는 조화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섞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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