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인플레이션을 봐라. 2%대 후반에 고착돼 있지 않느냐."
17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는 저물가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한은이 전가지보(傳家之寶)처럼 내세워 온 것이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지금 물가만 보지 말고, 소비자들이 향후 물가를 어떻게 예상하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전임 김중수 총재는 "통화정책 목표는 국민들의 물가 기대심리를 잘 고착시키는 것이다"고 누차 언급했고, 이주열 신임 총재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낮은 물가가 지속되지만 기대 인플레가 3% 부근에 안착하고 있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기대 인플레가 과연 한은이 통화정책의 중요 타깃으로 삼을 만큼 유효한 지표냐는 점이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이 2002년 2월부터 매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기대 인플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 후반대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지난달 기록했던 2.8%가 역대 최저치다. 저물가 행진이 지속되고 심지어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은 과거 경험상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거품이 있다. 물가인식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보면 확연하다. 기대 인플레가 향후 1년간 기대 물가수준을 조사하는 것인 반면, 물가인식은 과거 1년간 물가 수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다. 물가인식을 조사하기 시작한 작년 1월부터 지금까지 두 지표는 거의 엇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차이가 난다고 해도 0.1~0.2%포인트 수준이었고, 지난 달엔 기대 인플레와 물가인식이 모두 2.8%로 동일했다. 지난달 실제 소비자물가상승률(1.3%)의 두 배를 넘는다. 기대 인플레만 보면 마치 소비자들이 향후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재와 향후 물가가 비슷할 거라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기대 인플레는 높게 형성돼 있지 않느냐"는 한은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사 방법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답변은 ▦0~1% ▦1~2% ▦2~3% ▦3~4% ▦4~5% ▦5~6% 등. 물가는 소수점 단위로 미세하게 변동을 하는데 선택의 폭은 1%포인트 단위로 넓다 보니 변별력이 크게 떨어진다.
일각에선 물가 전망이 계속 빗나가고 물가안정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는 비판이 비등하자 한은이 기대 인플레를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실장은 "기대 인플레는 점진적으로 변하고 중간으로 회귀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자체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고 평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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