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순간 베테랑의 진가가 드러났다. 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가 꼭꼭 숨겨왔던 세터 이숙자(34)‘카드’를 꺼내 들면서 분위기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1승2패로 벼랑 끝에 몰렸던 GS칼텍스는 2일 평택 이충문화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3~14 V리그 챔피언결정(5전3선승제) 4차전에서 3-1로 승리를 거두고 승부를 최종 5차전으로 끌고 갔다.
이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이는 역대 챔프전 남녀 최다득점 신기록(54점)을 세운 베띠 데라크루즈(28)였다. 그러나 이선구(62) GS칼텍스 감독을 웃게 한 선수는 베테랑 세터 이숙자였다.
사실 이숙자는 2013~14 시즌을 앞두고 좌측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해 챔프전 출전이 쉽지 않아 보였다. 피나는 재활 끝에 지난 2월20일 5라운드 흥국생명과의 경기를 통해 복귀전을 치렀지만 컨디션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이 감독도 일단 한 시즌 내내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던 정지윤(34)을 좀 더 중용했다.
그러나 이숙자는 이날 1세트 22-24로 뒤진 상황에서 전격 투입돼, 경기 흐름을 바꿔버렸다. 25-25에서 기습적으로 배유나(25)에게 퀵오픈 공을 뽑아주면서 점수를 뒤집었고 마지막에 베띠에게 안정된 토스로 극적으로 1세트를 따내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이숙자는 특히 정대영(33), 배유나에게 속공 토스를 전달해 상대 블로커를 현혹시켰다. 베띠 봉쇄에만 집중하던 기업은행은 GS칼텍스의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숙자는 승부처였던 4세트에는 아예 선발 투입돼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3차전까지 침묵했던 배유나가 13득점(공격 성공률 53.33%)으로 완벽하게 살아나기까지는 이숙자와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감독이 챔프전을 앞두고 “이숙자가 선수들과 오래 호흡을 맞춰 속공 토스에 능하다”고 했던 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지난해 기업은행의 통합 우승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이숙자는 이번 챔프전에 대한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20년 넘게 배구를 했어도 오랫동안 쉬다가 챔프전에 나서니 긴장된다”고 웃은 뒤 “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 다행이다. 반드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GS칼텍스는 4일 오후 5시 기업은행 홈 구장인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챔피언결정 5차전을 치른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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