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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미치지는 않는다… 회의·의심·불신이 빚는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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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미치지는 않는다… 회의·의심·불신이 빚는 파국

입력
2014.04.0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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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부모 재산을 둘러싼 이기심, 그리고 의붓남매 간 불륜 등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베키 쇼'라는 30대 미혼 여성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연극 '베키 쇼'의 인물들이 지녔던 흠결은, 종잡을 수 없이 증식해버리는 검버섯처럼 몸집을 불려갔고 그래서 관객의 눈엔 모두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웃이고 혹은 가족 중 한 명일 수 있는 이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마치 베키 쇼가 무대에 오르며 어떤 비밀스러운 스위치를 켜기라도 한 듯, 심장 깊숙이 갈무리해뒀던 내재된 위험 요소를 몽땅 드러낸다.

서울 두산아트센터가 '2014 두산인문극장'의 첫 공연으로 선보이는 연극 '베키 쇼'(4월 26일까지)는 인간의 양면성이 얼마나 쉽게 외면으로 드러날 수 있으며, 사람들의 관계가 순식간에 뒤얽히고 삶이 균열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불신시대'라는 두산인문극장의 주제에 어울리게 '베키 쇼'는 인간이 지닌 회의, 의심, 불신의 여러 사례를 4명의 남녀 주인공을 앞세워 객석에 전달한다.

국내 초연인 '베키 쇼'는 우리에겐 미국 TV드라마 '콜드 케이스', '하우스 오브 카드', '로 앤 오더'의 작가로 잘 알려진 지나 지온프리도의 2009년 작품으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중견 연출가 박근형이 무대화한 이번 '베키 쇼'는 인간의 양면성을 호텔방과 집안으로 나뉜 무대공간 연출로 세련되게 그린다. 원작자가 위트 넘치는 대사로 혼돈에 빠진 인간관계를 그려내는데 치중했다면 박근형은 인물의 무대 위 배치 등 미장 센에 집중해 이를 표현했다 할 수 있다.

시놉시스는 매우 미국적이다. 의붓 남매인 맥스(신덕호)와 수잔나(김도영)는 다발성경화증에 시달리는 어머니 수잔(이연규)과 재산문제로 티격태격하다 공포영화를 보며 우발적인 섹스를 한다. 하룻밤 운우지정이 사랑이 아니라 확신한 수잔나가 앤드류(박윤희)와 결혼하며 막 행복을 이어가려는 찰라, 베키 쇼(강지은)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든다. 베키 쇼는 스토커, 혹은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에 가까운 심리상태를 보이며 수잔나 커플의 결혼생활과 수잔나와 맥스의 불륜을 동시에 조각낸다. 하지만 베키 쇼의 행태가 유일한 배척대상은 아니다.

지온프리도는 작가노트를 통해 "(베키 쇼를 포함해) 어떤 인물도 (홀로) 미쳤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신시대'를 상징하는 극중 인물간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느 한 인물의 탓이 아님을 강조한다. 관객은 저마다의 잣대를 적용해 서로 다른 인물을 욕하거나 혹은 동정한다. 오직 베키 쇼만 미친 게 아님을 발견한 후 객석은 동요한다. 누구도 미치거나 혹은 정상일 수 있는, 이런 게 '불신시대'의 맨 얼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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