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가 산 너머에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앞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서울 낙산 자락에 자리한 산동네 이화동의 변신이 심상찮다. 동네를 보기 위해 가파른 골목을 마다치 않고 하루에 수십 명의 시민이 찾아온다. 대학로 뒤쪽 낙후한 동네로 인식되던 이곳에 최홍규(57) 쇳대박물관장이 둥지를 틀고 마을박물관을 만들면서부터다. 2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만난 최 관장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낡은 가옥들을 파랑새에 비유하며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문화유산”이라고 소개했다.
아름다운 철물로 유명한 ‘최가 철물점’대표이기도 한 그는 마을에 대한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벌써 3년째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제쳐놓고 사비를 털어 마을 살리기에 앞장선 건 십 년전 동네의 아름다움에 눈뜨면서다. 당시 이화동 초입에 쇳대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인연을 맺은 최 관장은 “이곳에선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것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말로 동네의 매력을 풀기 시작했다.
“1950년대 대단지로 개발한 도시계획 구조가 보존돼 있고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죠. 동대문 시장에 의류를 공급하기 위해 모여든 봉제공장들의 흔적, 재래식 화장실과 나무 전봇대 등 서울에서 더 이상 찾기 힘든 생활사 자료가 넘쳐 납니다.”
여기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3년의 세월을 통해 마을 곳곳에 문화가 흐르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 화가, 조각가, 보자기공예가 등 문화계 지인들을 불러모아 마을에 공방과 작업실을 만들고 전시를 열었다. 예술인들이 나서자 수십 년간 무관심 속에 방치돼있던 마을이 금세 문화 쉼터로 변신했다. 마을 한복판에는 평상과 벤치, 텃밭이 있는 공동 공간이 꾸려졌고, 무너져 가던 회색 담장은 생기 넘치는 벽화로 채워졌다.
강남에 살던 최 관장은 아예 이 동네로 이사를 와 진짜 주민이 됐다. 작은 일 하나라도 주민 입장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다. 최 관장은 “동네를 살리기 위해선 마을 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먼저”라며 “초기엔 ‘당신이 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말을 듣기 일쑤였지만 매일 동네 주민들과 부대끼다 보니 집안 대소사를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며 웃었다.
최 관장이 주민의 눈으로 동네를 바라보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그것이 주민들의 행복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혜택을 그대로 누리는 것이 관이 주도하는 다른 프로젝트와 다른 점”이라면서 “주민협의회 등 자치기구를 통해 텃밭 가꾸기부터 수익 사업까지 마을 만들기와 관련된 모든 논의를 주민이 직접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봄 마을박물관 전시에는 3대째 마을에서 사는 한 주민이 직접 참여해 자신의 일대기와 마을의 역사를 사진 등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낡은 주택을 외국인이 묵어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협동조합으로 운영하거나 동네 어르신들이 관광객에게 마을을 안내하는 ‘해설사’로 활동하는 등 아이디어도 주민 주도로 진행 중이다.
3년 동안 매일같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무릎이 상했다는 최 관장은 “문화 마을로 뿌리내리기까지 아직 할 일이 많다”면서 들뜬 표정이었다. 그는 “마을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면서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마을을 구경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체험하며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개관한 이화동 마을박물관은 보수를 거쳐 오는 5월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글ㆍ사진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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