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직장인 구모씨는 2월 중순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전용면적 85㎡ 아파트를 3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했다. 특이한 것은 2년이 아닌 1년짜리 전세계약이었다는 점이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2008년 결혼 뒤 세 번 이사를 했다. 한 곳에 계속 살고 싶었지만 5,000만~8,000만원씩 전셋값을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요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2억8,000만원으로 시작한 전세 비용은 6년 만에 8,000만원이 더 늘어났다. 결국 구씨는 차라리 대출을 더 받아서 집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집을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 입지나 자녀 학군도 따져야 하고 급매물이나 미분양 아파트 등의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전세 계약 만료일이 다가왔다. 사정을 들은 공인중개사는 "그럼 전세로 1년만 계약을 하라"고 권했다. 듣고 보니 손해 볼 게 없는 거래였다. 2년 계약을 하고 도중에 해지 하려면 직접 새로 올 임차인을 구해주고 중개 수수료까지 부담을 해야 한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바로 돌려주지 않아도 딱히 항의할 길이 없다. 1년 계약이 끝나도록 집을 사지 못할 경우 다시 계약을 1년 연장하면 그만이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전용면적 114㎡ 아파트를 소유한 60대 초반 이모씨도 지난달 전셋값 5억5,000만원에 1년짜리 계약을 했다. 이유는 정반대였다. 현재 살고 있는 동부이촌동과 분당의 아파트까지 세 채를 보유하고 있는 그는 올해 안에 논현동 아파트를 처분할 계획이다. 임대소득 과세 방침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게 직접적인 이유였지만 마침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여 결심을 하기 쉬웠다.
문제는 기미만 보일 뿐 실제 가격은 제자리라는 점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세 1년 계약이었다. 이씨는 "2년 계약을 하고 중도에 아파트를 팔면 문제가 될 수 있어 단기 계약을 제안한 것"이라며 "세입자가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전세 물량이 워낙 드물어 사인을 하더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도 전세대란이 지속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단기 전세'라는 새로운 풍속도가 자리잡고 있다. 집을 빨리 처분하려는 세대주와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 못해 주택 구매에 나선 세입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1년 전세 계약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법적 임대기간은 2년이다. 별도 기간을 정하지 않거나 2년 미만으로 계약을 해도 세입자는 2년간 법적 권리를 인정받는다. 다만 집주인과 세입자가 합의한다면 2년 미만의 계약이 가능하다.
사실 단기 전세는 이사 주기가 짧아지는 만큼 세입자나 세대주 모두 달갑지 않은 계약일 수 있다. 전세의 경우 통상 도배나 장판 비용을 세입자가 부담하는 점을 감안하면 세입자의 부담이 조금 더 크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집을 사거나 팔 의사가 있는 경우라면 2년 계약은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 계약 기간 도중에 해지를 할 경우 상대방의 이사비용이나 중개수수료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세입자가 먼저 1년 계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늘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 매매가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 임대기간 단축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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