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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프로그램… 쏴~ 그린 샤워, 어느덧 심신이 가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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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프로그램… 쏴~ 그린 샤워, 어느덧 심신이 가뿐해졌다

입력
2014.04.0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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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을 굳혀놓은 듯한 얼굴, 비에 젖은 짚단 같은 몸뚱이. 삶에 지친 남자는 7,200살 먹은 나무가 산다는 일본의 섬으로 향한다. 그리고 신비로운 숲에서 남자는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스크린 가득 습윤한 녹색이 번지는 '시간의 숲'(2012)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뼈대다. 쳇, 이건 너무 나태한 영화의 태도가 아닌가. 숲이 '힐링'을 캔에 담아 파는 자판기가 아닐진대, 숲이 어떻게 인간에게 위안이 된다는 건지 이유가 있어야…

"선생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자, 먼저 숲에게 물어 보시라니까요. 괜찮겠냐고."

숲치유사 김명혜씨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경기 양평군 단월면 국립산음자연휴양림. 이곳에서 진행하는 '치유의 숲'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것인데, 굼실굼실 비딱하게 기어가는 생각의 꼬리를 지켜보느라 혼자 꾸물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저…괜찮겠냐라니요?" 김씨가 대답했다. "숲은 여러 생명이 모여 사는 집이니까요. 우리가 지금 그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려는 참이잖아요." 숲의 양해를 구하기. 치유의 숲 프로그램의 첫 단계였다.

휴양림이 위치한 마을의 이름(山陰)은 '산 그늘'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의 이름난 산인 용문산(1,157m)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방향, 북쪽 사면에 마을이 위치해 있다. 비솔고개에서 시작되는 임도가 구불구불 휴양림을 아래로 끼고 돈다. 산악자전거 타는 이들에겐 전부터 유명했던 곳이다. 문례봉(1,004m)과 봉미산(856m)이 둘러싼 조붓한 계곡에 휴양림이 문을 연 건 2000년. 그리고 2007년 이곳에 국립 휴양림 최초로 치유의 숲을 조성하기 시작해 2009년 개장했다. 이듬해 봄부터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상설 운영 중이다.

"새소리 참 좋죠? 봄은 새들이 짝짓기를 하는 철이에요. 그래서 숲이 온통 새들의 노래로 가득하죠. 우리도 소리를 한번 내 볼까요. 만트라 요가, 소리 치유라는 겁니다. 저음으로 '이' 소리를 길게 내 보세요. 심장의 기운을 북돋아 줄 거예요."

치유의 숲에서 진행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은 단순한 휴양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대체의학의 하나로 인정받는 것이다. 숲과 건강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라고 한다. 미국에서 폐병이 번져 넘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숲 속에 임시로 텐트 병동을 차렸는데, 기존 병실보다 임시 병동 환자들의 치료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후 숲이 환자의 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됐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자존감을 키워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숲의 효과는 크다. 독일에서는 삼림욕이 의사의 처방에 포함돼 삼림욕에 드는 비용을 의료보험으로 보전해 준단다.

느리게, 고요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짤막하게 체험해 본 치유의 숲의 성격은 그랬다. 같은 날 치유의 숲에 참여한 40대 남자는 겉으로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병이 깊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결코 꺼내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그는 담담히 했다. 맑은 새소리와 바늘잎의 향기에 둘러싸인 안정감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치유의 숲 프로그램엔 체조와 스트레칭 같은 신체적인 것부터 심리상담까지 넓은 치유의 방법이 포함돼 있다. 지난달에는 2월 중순 부산에서 일어난 선박 기름 유출 사고를 맨몸으로 막았던 해양경찰관들이 이곳으로 와 특별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한다. 소방관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 쉬운 사람, 감정노동으로 분류되는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이 치유의 숲의 '단골'이라고 한다.

"숲의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세요. 사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기피물질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인간의 몸에 좋다는 것은, 나무와 인간이 처음부터 더불어 살아온 존재라는 증거겠죠."

이날 프로그램을 맡은 김씨를 포함해 산음자연휴양림엔 5명의 숲치유사가 근무한다. 모두 자격시험을 통과한 전문가들이다. 한의학, 아로마 테라피 등 각자의 전공에 따라 특화된 프로그램을 맡는다. 치유의 숲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40여 가지. 삼림욕 체조부터 맨발 걷기, 자연물로 인사하기, 밤(夜) 숲 명상, 낮잠 즐기기 등 다양하다. 참여자의 연령과 성,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다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당일형(6시간)과 1박 2일형(10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90분 가량 치유의 숲을 잠깐 체험할 수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 숙박을 할 경우 휴양관 이용료만 받는다.

산음휴양림을 찾아간 것이 치유의 숲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예년보다 보름씩은 일찍 꽃봉우리를 터뜨린 가로수를 바라보며 화사한 빛깔을 분홍 속저고리처럼 두른 산을 보고 싶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딱 100분 거리. 그러나 숲은 아직 저고리는 이르고 노란 속곳만 입고 있었다. 갓난아기의 기침 같은 생강나무의 자디잔 꽃술. 콜록콜록, 산이 뱉은 여린 기침으로 숲 속의 봄은 촉촉했다. 꿩의바람꽃으로 발목 틔〉?딱 그만큼 환했다. 파랗게 돋은 구절초 새순이 청량한 향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적잖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들게 된, 어떤 깨달음.

'숲이 사람에게 위안이 돼 주는 데 이유 같은 건 없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숲은 늘 인간의 고향이었으니까.'

●산림청은 산음자연휴양림, 축령산자연휴양림(전남 장성), 숲체원(강원 횡성) 등 3곳에서 치유의 숲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소 신청 인원이 정해져 있어 홈페이지 등을 통해 미리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http://cafe.naver.com/saneumhealing 국립산음자연휴양림 (031)774-8133

양평=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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