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려 말끔하게 쟁기질을 끝낸 밭의 한가운데, 처음엔 그냥 바윗돌인 줄 알고 지나친 저것은, 플라스틱 안내판 하나 없었지만 분명 고인돌이다. 거북이 발처럼 짧은 고임돌과 묵중한 덮개돌. 짐작건대 커서가 아니라 작아서 무탈했을 것이다. 깨뜨려서 들어내 버렸을 때 더 얻을 소출의 기대와 그랬다가 혹 동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저울질. 단군 할아버지의 노여움을 무릅쓸 만큼 저 돌무더기가 차지하는 농토의 면적이 넓지 않아서, 농부는 고인돌을 제 밭에 그냥 둔 것일 테다. 어쨌거나.
몇 번째 봄일까.
땀 묻은 어깨에서 피어 오르는 김 같은 흙의 훈김을 뱉어내는 밭엔 일년생 작물이 파종될 것이다. 싹이 돋고 잎이 퍼지고 줄기가 굵어져 베어져 나간 다음 남은 지스러기가 다시 다음해의 거름으로 썩어가는 열두 달의 사이클. 그 사이클이 막 시작되려는 들의 표정은 들떠 있었다. 두런거리는 열두 달의 달음박질 앞에 고인돌은 수천 년의 무게로 박혀 있었던 것인데, 그 아연한 풍경이 만근 무쇠로 만든 닻이 파도 치는 시간 속에 내려져 있는 것처럼 다가왔다. 저 고인돌은 이 들에서 얼마나 많은 탄생과 죽음, 살육, 번영, 몰락, 음모, 희생을 지켜봤을까.
마감 중인 편집국 벽에 걸린 TV에선 백년의 명분을 입에 담는 누군가의 말이 생중계되고 있다. 풋내 나는 인식의 빈천함에 담기는 시간의 가벼움이여….지난 주 찍은 사진 가운데 지금 굳이 이 고인돌을 골라낸 것은 아마도 반작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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