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 때문에 숨진 것으로 알려진 국회의원 비서 출신의 아파트 재건축조합 감사가 조합장에 의해 청부 살해된 사실이 10년 만에 밝혀졌다.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범행도구가 발견됐음에도 감식 의뢰를 하지 않았고, 석연치 않은 부검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단순 변사 처리한 것으로 드러나 부실 수사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일 인천지검에 따르면 2004년 재건축사업 시행 인가를 받은 경기 부천시 원미구의 모 아파트 조합장 이모(59)씨와 조합 감사 배모(당시 45)씨는 조합비 지출 등 조합 업무와 관련해 사사건건 충돌했다. 둘의 갈등은 2004년 4월30일 조합 이사회에서 배씨가 "무능한 이씨를 조합장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극에 달했다.
화가 난 이씨는 평소 다니던 게임장 직원 오모(47)씨에게 500만원을 주면서 "강도로 위장하고 배씨를 폭행해 조합 회의에 나오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청부했다. 배씨의 사진과 주소, 귀가시간 등도 건넸다.
오씨는 그 해 5월11일 후배 김모(39)씨와 함께 배씨의 아파트 앞에서 잠복하다 귀가하는 배씨의 머리를 둔기로 2차례 때린 뒤 지갑을 빼앗아 달아났다. 그 시각 이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집에서 인터넷 게임에 접속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배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0일 뒤 심 정지에 의한 뇌 손상으로 숨졌다.
당시 경찰 등 수사기관은 배씨와 갈등관계에 있던 이씨를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찾지 못해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했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돌멩이는 감식 의뢰조차 안 됐고 오씨 등은 수사망에 포착되지도 않았다. 당시 부검의도 "배씨는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고 이마 부위 골절이 사인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이씨 등의 혐의는 인천구치소에 수감된 한 재소자가 검찰에 "배씨가 실제로는 살해됐다"는 제보를 하면서 드러났다. 검찰은 이씨의 통장 거래 내역을 파악해 오씨에게 현금이 넘어간 흔적을 찾아냈고, 당시 배씨의 진료기록을 다시 검토해 "두개골 타격에 의한 심 정지로 사망했다"는 법의학자의 감정 의견도 확보했다. 검찰은 강도살인 혐의로 이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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