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과 분쟁 우려를 안고 있는 중국에도 또 북한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사진) 연구위원은 2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을 포기하고 맞은 결과라는 점을 북한은 눈여겨 볼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경우 글로벌시장을 지향했던 미국과 유럽이 결국 그 경제협력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것을 보며 중국이 지금보다 덜 개방적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이며 특히 민주당의 정책 산실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이다. 미국안보와 국제질서가 전공인 라이트 연구위원은 이날 서울 종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국의 외교전략과 국제질서에 미치는 함의'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라이트 연구위원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미국을 비롯해 각국의 세계화에 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냉전 이후 세계는 한 마음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왔고 그를 위해 시장을 개방하고 기술을 공유해왔다"며 "20여년 계속돼온 동서의 경제적 상호의존이 자국의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보여줬다"고 말했다.
라이트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미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사이의 정쟁"이라고 전제하면서 "이 전쟁에는 총, 칼, 폭탄이 없다"며 "가장 위협적인 무기는 바로 '경제 제재'"라고 지적했다. 경제 제재가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양측이 쌓아온 "상호의존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미국에 의지했던 금융은 은행 제재로, 유럽이 러시아에 의존했던 자원은 '가스 공급 중단 가능성'이라는 불안으로 옥죄어 들기 때문이다.
라이트 연구위원은 이어 이번 사태로 "세계는 전혀 다른 경제적 전략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 제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 회사들은 서구 은행에서 수조 달러의 돈을 빼냈고, 푸틴은 러시아 기업에게 해외가 아니라 국내사업에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유럽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을 줄일 방안을 찾고 있다.
상호의존에서 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홀로 살아가기 위해 강력한 보호막을 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반대로 상호의존성을 다양화라는 방법으로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그는 "상호의존성을 다양화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다양성에 기반한 더 많은 교역이 진정으로 상호이익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존'이 무기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는 터키 대사를 비롯한 주한 외교 관계자들과 전문 연구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라이트 연구위원의 기조 강연 이후 발언에 나선 참석자들은 미국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하칸 옥찰 터키 대사는 자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언급하며 "EU가 먼저 우크라이나를 실망시킨 것 아니냐"고 말했다. 태평양포럼의 독일 연구원은 이번 사태로 "직접 피해를 보는 건 미국이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이라며 미국과 유럽의 온도차를 지적했다. "러시아가 도대체 피해를 보는 게 무어냐"고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연구원도 있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김연주 인턴기자(이화여대 영문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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