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대북 3대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은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시험하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 위협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격에 이어 '대화 환경 부재'란 정세 인식을 부각시키며 대북 제안을 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 남북간 공방 대상인 '비방ㆍ중상 중단' 합의 파기를 제안 거절의 이유로 내세운 뒤 그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1일 대북 제안보다 북한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 목숨을 건 탈북 행렬 등 박 대통령이 통일 구상의 배경으로 설명한 언급이 비방ㆍ중상에 해당한다고 간주했다. 때문에 드레스덴 제안은 '너절한 수작'에 불과하고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민 인터뷰 형식을 빌리긴 했으나 '촌 아낙네처럼 놀아대기' '괴벽한 노처녀' '늙은 암탉의 추태' 등 역대급 막말을 쏟아내며 박 대통령의 책임론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무력 도발과 대남 비난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핵실험 시사와 NLL 포격이 미국을 향한 군사적 시위 성격이 강한 반면, 박 대통령에 대한 거친 언사는 남북관계 경색을 상정한 노림수로 판단된다.
다만 북한이 겉으로 여러 강경 카드를 내밀었지만 궁극적 목적은 국제사회와 남측의 반응을 떠보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박 대통령 비난에 국가기구가 아닌 우회 방식(언론)을 택한 점, NLL 포격 사실을 사전 통보한 점 등에서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고 보기 어렵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관계가 좋았을 때도 북한이 남측의 호혜적 제안에 곧바로 응한 적은 없었다"며 "도발 수단을 다양화하며 남측 당국이 진심으로 도울 의지가 있는지를 테스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남북의 입장차가 확연해 관계 개선을 위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드레스덴 제안을 추진하려면 북한의 호응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비방ㆍ중상 부분도 북한과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취약 계층(북한 어린이)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비방이라 하는 북한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현재로선 우리가 통일 구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위급접촉 등의 대화를 제안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남북이 상대의 태도 변화를 대화 조건으로 고수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관계 경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치 일정상으로도 그렇다. 이달 중순까지 한미 연합훈련과 17~18일 한ㆍ미ㆍ일 안보토의(DTT)가 예정돼 있고, 이달 말쯤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도 잡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선 한ㆍ미ㆍ일 3각 공조 방안과 함께 북핵 폐기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계획이어서 북한의 도발 강도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김일성 생일(15일)과 인민군 창건일(25일) 등 주요 행사를 앞두고 있어 체제 결속 차원에서 강경한 대외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남북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 드레스덴 제안도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독일 사례를 본 뜬 통일 구상의 본질을 흡수 통일이라 판단한 것 같다"며 "정부가 먼저 대북 제안의 후속조치를 내놓아야 남북 대화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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