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이 부랑인을 강제 수용한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 410호' 공포 이전인 1970년대 초반에도 인권유린을 자행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본보 1일자 11면 보도)과 관련해 부산시가 당시 형제복지원의 '아동 인격존중'을 '양호'하다고 평가했던 공식 문서가 발견됐다. 부산시가 실태점검을 부실하게 해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 실상을 은폐했던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1일 한국일보가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입수한 부산시의 '1975~1987년 형제복지원 출장복명서(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 3월26일 부산시 부산진구청 대연출장소는 용당동 2번지에 있던 형제원의 아동복지시설 인가 갱신을 위한 실태조사에 나섰고, 평가표의 '아동에 대한 평등대우'와'인격존중'항목에 각각 '양호'라고 평가했다. 형제원은 1976년 부산 북구 주례동으로 이전했고, 1979년 형제복지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실태조사했던 공무원은 기타 참고사항에 '(형제원은) 아동 수용에 적합한 지역이며 입소한 아동들이 건강하고 운영상황이 양호하므로 시설인가 갱신이 가능하다'는 의견까지 밝혔다. 그러나 1970~78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김희곤(54)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열살 때 부산역에서 끌려간 뒤 그곳에서 매타작은 물론, 식당에서 밤새 일본에 수출할 낚시용품을 조립하거나 산에 끌려가 강제 노역한 날도 많았다"며 "맞아 죽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박인근 원장 일가가 현재 운영 중인 '실로암의 집'의 관리ㆍ감독 기관인 부산 기장군청이 보관하고 있다가 2008년 6월25일 관련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에 이관됐다.
1975년 말 내무부 훈령이 공포된 이후 형제복지원에 쇠창살 등 잠금장치까지 설치된 1982년 12월에도 부산 북구청은 박 원장의 정신요양시설 설치 허가 신청에 따라 7급 주사보가 현지조사에 나섰지만 보고서에는 가혹행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고 '(형제복지원이) 사회복지사업법에 적합하고 심신요양의 적지라고 생각된다'고만 기록돼 있다.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당시 공무원들이 매년 감사를 나가긴 했지만 커피 한 잔 마시고 사인해주고 돌아오는 형식적인 감사에 그쳤다"며 "박 원장이 지역 유지인데다 전두환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는 사진까지 사무실에 걸려있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은 부산시 위탁을 받아 운영한 비영리법인으로 당시 전체 예산의 80%를 국고 및 시비로 지원받고 있었다. 그러나 시는 구청에 감독을 위임했고 구청은 7급 주사보 한 사람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 실제 관리감독은 불가능했다. 1987년 당시 야당인 신민당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86년 수용자 3,975명 가운데 구청의 의뢰로 입소한 피해자만 253명이다.
한편 부산시는 최근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가 2012년 사회복지사업법을 다수 위반한 점을 들어 법인설립허가 취소를 검토하는 등 뒤늦게 움직이고 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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