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그린 도면 갖고 찾아온 집주인에 서현 교수가 무료로 설계해 줘조각보처럼 기워진 콘크리트 차가운 질감에 살림집 특유의 온기벽돌 벽으로 거실과 다락방을 분리하중 분산 위해 구멍 3개 만들어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각 효과천장과 벽에 같은 폭으로 창 연결… 햇볕과 산 풍경을 집안으로 들여
손바닥만한 원룸을 전전하는 이들이 어김없이 맞닥뜨리는 대형 꽃무늬 벽지는 가난으로 인해 견뎌야 할 몰취향의 상징이다. 합지와 실크벽지, 다시 광폭과 소폭으로 나뉘는 벽지의 계급은 치열하게 늘려나가는 아파트 평수처럼 마땅히 쟁취해야 할 삶의 질의 척도이기도 하다.
집에 벽지를 바르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피라미드 같은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은 사람. 쟁취의 기쁨도, 상실의 설움도 마다한 채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다지는 사람. 그가 꿈 꾼 집은 어떤 모습일까.
충북 충주 시내에서 20여㎞ 떨어진 무명의 산을 오르다 보면 흔한 농가주택 사이, 노스님의 승복처럼 혈기를 말끔히 지운듯한 회색 콘크리트 집이 보인다. 건축면적 55.48㎡(16.8평)의 네모 반듯한 단층집. 근처 요양원 간호사로 일하는 K씨가 지난해 5월 입주해 1년 가까이 살고 있는 '문추헌'이다.
"제가 그린 설계도 한 번 봐주세요"
한 지역에 오래 정착한 적이 없던 그가 고향도 아닌 이곳에 집을 짓기로 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예순에 가까워진 나이가 수많은 원인 중 하나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자신에 대해 말하기 꺼려하는 K씨 대신 문추헌을 설계한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가 귀띔을 주었다. "평생 외국을 다니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한 분이에요. 몸이 좀 편해졌다 싶으면 거처를 옮기는 데, 마침 충주에 땅을 샀나 봅니다."
K씨가 서 교수를 찾아온 것은 2012년 5월이었다. 정식으로 설계를 의뢰하려는 게 아니라 직접 그린 집의 설계도를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도면을 보는 이가 건축계의 알아주는 글쟁이이자 "비닐하우스도 집"이라며 태풍에 강한 비닐하우스를 개발, 특허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저 먼 친척의 지인 중 건축하는 사람이 있다더라 하는 말에 그는 정성껏 그린 도면을 가지고 왔다.
설계도는 한마디로 집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못되었다. 50㎡(약 15평) 남짓한 직사각형 집에는 방과 창, 싱크대의 수치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지만 2m라고 표시한 곳이 2.6m 로 표시한 곳보다 길고, 방과 화장실에 필요한 기본 면적 등도 전혀 고려돼 있지 않았다.
어설픈 도면에는, 그러나 들여다본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린 이의 부푼 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마당에 심을 나무는 '사철, 쥐똥'으로 수종까지 적었고 '나무 담장, 데크, 연못' 등 희망사항이 소상히 쓰여 있었다. 벽난로라고 썼다가 'X'표를 치고 화로로 고쳐 쓴 대목에 이르면, 어쩌면 한 번도 자기 몫을 고집해본 적 없는 그가 처음으로 부린 욕심이 아닐까 하는 추측마저 들었다.
서 교수는 K씨를 앉혀 놓고 하나하나 설계도를 수정해갔다. 잘못된 수치를 교정하고 방과 화장실에 필요한 규모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돌려보낸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대로 두면 K씨가 꿈꾸던 집을 짓기는커녕 더 이상 건축이 진행되지 못할 게 뻔했다. 서 교수는 결국 충주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땅이 예뻤습니다. 대학원생들을 동원해 바로 설계도를 그리고 모형을 만들었죠."
문추헌은 이렇게 시작됐다. 설계비는 받지 않기로 했다. 애초 K씨는 집을 짓는 데 5,000만원 이상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 교수의 건축은 늘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빈자를 위한 건축에 헌신해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몫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의 주변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저울추를 공평하게 돌려놓으려는 자연의 힘에 지배 당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설계비를 달라고 합니까." 서 교수는 그렇게만 말했다. 마침 그는 서울 가락동에 아파트 9,500세대를 설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 "돈은 여기서 벌면 되죠." 그가 대수롭지 않은 듯 덧붙였다.
천창을 통과해 들어오는 검박한 빛
설계에서 가장 많이 고려할 것은 예산이었다. 50㎡에 예산 5,000만원이라면 평당 시공비가 330만원 정도다. 턱없이 낮은 금액이지만 K씨는 그 가격에 맞추겠다는 건설회사를 용케 찾아냈다. 건축가가 할 일은 여기서 비용이 더 늘지 않는 조건 하에 최대한 건축의 묘를 살리는 것이었다.
"콘크리트에 벽돌을 붙여 만드는 것이 가장 싸다"는 시공사의 말에 따라 벽돌 집을 지으려던 그는 벽지를 바르고 싶지 않다는 건축주의 반대에 부딪혔다. K씨는 "가식적인 것 같다"고 짧게 말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서 교수는 집의 안팎을 바꾸기로 했다. 외부는 콘크리트로, 내부는 주홍색 벽돌로 이뤄진 특이한 집이 탄생했다. 외장 콘크리트는 바둑판처럼 일정한 간격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직사각형이 여러 지점에서 맞물리도록 분할했다. 조각보 마냥 기워진 콘크리트는 차가운 회색 건물에 살림집 특유의 온기를 부여한다. "이런 건 돈이 드는 게 아니거든요. 공사할 때 신경만 좀 쓰면 되는 일이에요."
여기에 외벽과 같은 재질로 캐노피를 달았다. 비용의 한계 때문에 벽의 양을 최대한 줄이느라 집은 네모난 상자 형태가 됐고 따라서 비와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집을 보호할 장치가 따로 없었다. 건축가는 전면의 대형 창과 후면의 출입문을 감싸는 듯한 형태의 캐노피를 만들되, 구조체와 수평을 이루지 않도록 사선으로 깎았다. 문추헌을 위에서 보면 두 개의 직사각형이 각도를 살짝 튼 채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선의 차양은 길 쪽으로 난 창에선 깊숙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행인의 시선을 차단하다가 반대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며 햇볕을 한껏 받아들인다. 볕의 각도가 바뀔 때마다 캐노피가 그려내는 각양의 그림자는 돌덩이 같은 집이 갖는 유일한 표정이다.
내부는 단순하다. K씨가 처음 구상했던 주방 겸 거실, 침실, 화장실, 세탁실. 여기에 건축가는 다락방을 추가했다. "짐이 많으면 품위 있는 생활이 어렵다"는 그의 의견에 따라 집의 층고를 1.5층 정도로 높이고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높이의 다락방을 만들어 짐을 쌓아두도록 했다. 덕분에 거실 층고도 높아져 같은 크기의 다른 집들보다 훨씬 트인 느낌이다.
거실과 다락방을 분리하는 벽은 벽돌을 세워서 쌓았다.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벽돌에 낸 3개의 구멍을 장식으로 사용한 셈이다.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시각적 효과는 대단히 커서 집을 방문한 이들이 가장 먼저 쳐다보는 곳이 됐다.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K씨가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을 찾아 가져 왔다. 일본 가정집에 난 천창이었다. 자기 집을 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갖는 로망이 바로 이 천창이다. 그러나 집에서 뭔가를 끓이는 일이 많은 한국에서 천창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일쑤다. "결로가 생겨 물이 뚝뚝 떨어질 텐데 괜찮겠냐"고 묻는 서 교수에게 K씨는 "그럼 닦으면 되지요"라고 응수했다. 미를 위해 기능을 포기하는 이를 싫어할 예술가가 어디 있으랴. 서 교수는 천장에 길고 좁은 창을 낸 뒤 벽에도 같은 폭으로 창을 내 둘을 연결시켰다. 이어진 창은 하늘의 별과 맞은편 산의 풍경을 끊김 없이 담아낸다. 낮에는 가느다란 햇볕이 주홍색 벽돌 위에 드리운다. 절제된 볕은 검박한 집에 더 없이 잘 어울린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면적은 두 평(6.6㎡) 가량 늘었고 비용도 5,700만원을 약간 넘어섰다. 그 동안 서 교수는 마흔 번 가까이 충주를 왕복했다. 작지만 집주인의 모든 것이 걸린 집이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지난해 5월 집이 완공되고 K씨가 입주했을 때 서 교수는 작은 액자를 벽에 걸어 선물했다. 액자 안에는 1년 전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고쳐 그린 문추헌의 스케치가 들어 있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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