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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의 시간] <65> 분노의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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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의 시간] <65> 분노의 노트북

입력
2014.04.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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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7일, 이천시 호법면의 한 물류창고에서 근로자 40명이 숨지는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하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화재가 난 그 창고의 재산상 피해도 적지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숨진 분들이 생활의 여유가 없는 일용직 노동자 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당시 숨진 분들은 성실한 가장으로서, 착한 아들로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생활해 나가는 우리의 이웃 같은 분들이었지만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셨기에 필자 역시도 눈시울이 붉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 사건을 접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필자의 눈을 의심케하는 한 장면을 TV를 통해 보게 되었다. 그것은 이천 물류창고 화재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어느 한 언론사 기자의 가방에 넣어둔 노트북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사고가 난 다음날인 8일 오후 1시경, 휴대폰 영상으로 촬영된 그 폭발 장면은 한마디로 노트북이 발광(發狂)하는 듯한 모양이었다. 불꽃을 튀기며 사방팔방으로 펄쩍펄쩍 튀는 그 노트북은 마치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고 누군가 그 노트북을 마구 집어던지는 듯한 모양이었다.

그 장면을 본 필자는 "원귀(寃鬼)다" 라는 말이 절로 입에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식은땀이 등 뒤로 흘러내렸다.

'원귀(寃鬼)' 즉, 원한을 품은 귀신을 의미한다. 원귀의 존재는 비록 종교인이나 무속인 혹은 역술인이 아니더라도 영적인 감흥에 다소 민감한 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데 위 노트북 폭발의 경우에서 아마 필자와 동일한 느낌을 받은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화재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그분들 입장에서는 실로 원통했을 것이다. 아직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니 노트북 아니라 더 큰 물건도 집어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양(陽)의 존재가 아니라 음(陰)의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더 이상 양의 세계에서는 힘을 쓸 수가 없어 그것마저도 원활치 않았을 것이므로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은 크게 밝음의 양(陽)과 어두움의 음(陰)으로 구분 될 수 있다. 그 중, 음은 어두움이요, 습함이요, 숨어있음 이니 죽은 사람은 음으로 구분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단순히 양에서 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양의 영역에서 나와 음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즉, 사후(死後)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하는데 불교, 기독교 등 주요 종교에서도 표현되는 형태는 다소 다르나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공히 인정하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주장들은 여러 종교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필자의 경우는 중간계에 대한 의견을 비교적 신뢰하는 편이다.

중간계는 말 그대로 죽음 후, 저승 혹은 천국, 지옥을 가기 전 잠시 중간에 머무는 공간이다. 그곳은 현실과 그리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저승이라고 보기에도 어중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죽은 대부분의 존재들은 그곳에서 잠시 머물게 되는데 우리가 흔히 귀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들은 비록 죽은 존재이기는 하나 초기에는 살아 있을 때의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인간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후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나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나, 사람에 대한 분노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성향은 점차 중화되어 결국 인간으로서의 성향은 사라지게 되고 중간계를 떠나는 경우 완전한 무(無)의 존재가 되어 환생하거나 수호령으로서의 존재가 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영능력자들이나 무속인 중에 후손이 기도하면 그 조상을 불러내어 만나게 해주는 사례를 간혹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오신 그 조상은 중간계에 머물고 있는 분으로 보면 된다.

대게는, 4대 조상님까지 중간계에 계시는 경우가 많고 어떤 경우는 8대까지 계신 경우도 있는데 기도를 드리거나 꿈으로서 조상의 안위를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 4대 조상님을 위한 제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방법으로 확인하여 제사도 그에 맞게 드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중간계에 있는 그 존재들, 즉, 귀신이라고 불리는 그들은 인간에게 어떤 형태로건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왜냐하면 위에서도 설명했다시피 그들이 인간의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그러하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에 대해 원한을 품고 죽었다면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 할 것이고, 가장이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죽었다면 반드시 어린 자식을 지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음의 존재이니 보이지는 않으나 그 후손들이나 관련되는 사람은 꿈 등을 통해 자연스레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를 현실에서 보게 되면 어떤 흉(凶)한 존재가 나에게 해를 끼치려 할 때는 우선 꿈자리가 사나워지고, 주변이 어수선하게 변하면서 마가 더욱 잘 끼이게 되니 만사에 막힘이 많아진다. 반대로, 길(吉)한 맛怜?나를 돕는다면 기분 좋은 꿈을 꾸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한 환경으로 바뀌게 되고, 흉한 일을 당해도 오히려 길함으로 나타나니 흐뭇한 상황이 많아지게 된다.

이러한 이론에 입각하여 기문학(奇門學)에서는 매달의 운세를 뽑을 때 길신(吉神) 혹은 흉신(凶神)의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여 개인의 운세를 예측한다. 즉, 기문(奇門)은 귀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연구하는 학문적 특성이 그러한지라 지구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구에게나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마니또' 혹은 수호령, 수호천사와 같은 존재가 항상 따라 다니고 있음을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다만, 평소에는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큰 사고를 당하는 순간이나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되면 어렴풋이나마 그 존재에 대해 느낄 수 있게 된다.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사고 순간의 그 짧은 시간이 마치 슬로우모션 장면과 같이 느리게 보였다는 증언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 경우 그 사람은 불행 중 다행인 상황이요, 행운아 라고 판단하면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그 짧은 시간 중에 그 어떤 존재가 나를 보호하고 있기에 그러한 현상을 보는 것이며 만약, 그런 현상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사고의 당사자는 더 큰 불행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어린 시절 필자는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높이였다. 그러나, 필자는 전혀 다치지 않았는데 떨어지는 그 순간, 주변이 느리게 보이면서 누군가 필자를 가볍게 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 필자의 이러한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자신이 경험했었던 그 신비로운 상황에 대해 남들이 전혀 믿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역술인 부경(赴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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