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얼차려에 명치나 복부를 맨주먹으로 맞던 시절의 악몽때문에 불을 끄면 잠도 못 잡니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27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1987년 복지원 운영자인 박인근 원장이 구속되면서 3,000여명의 원생들은 '생지옥'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바깥 세상은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품지 않았고 그들은 이방인에 머물렀다. 물론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복지원에서 얻은 장애와 정신적 상처, 학업 중단, 가족해체 등으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에 머물거나 술에 의지하다 알코올중독자가 된 이들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84년 경찰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끌려간 이향직(43)씨는 퇴소 이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당시 다녔던 중학교를 찾았지만 학교 측은 "나이든 학생은 받아줄 수 없다"며 17살이 된 이씨를 거부했다고 31일 한국일보에 밝혔다.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는 등 주경야독했던 이씨는 검정고시로 중ㆍ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16년 전 결혼해 중학생 딸을 두고 있다. 경기도에서 조그만 장사를 하고 있는 이씨는 "복지원을 나올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말 붙이기도 어려웠고 사람들이 멀리할까 봐 복지원 출신이란 사실도 숨기며 외롭게 지냈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서 트럭운전을 하는 한모(39)씨는 "86년 복지원에 같이 들어갔던 동생은 퇴소 이후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 술에 의지해 살다가 사고를 당해 지적장애인 2급이 됐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은 단란한 가정을 이산가족으로 만들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박모씨는 31년 전 부산에서 행방불명된 아버지(당시 45세)가 울산의 한 정신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재작년에야 받았다. 당시 사업을 할 정도로 건강했던 아버지의 다리는 불구가 됐고 정신이상 증세도 있어 집에 모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974년 부산진역에서 복지원으로 끌려간 홍모(48)씨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아직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며 "7~8살 어린 나이에 끌려가 가족도 찾지 못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호적도 새로 만들었다"고 울먹였다.
1970~78년 수용됐던 김희곤(54)씨는 "내무부 훈령이 공포된 1975년 이전에도 폭력과 강제노역이 있었다"며 "초등학교도 못 마쳐 글도 잘 못 읽고 관절염을 심하게 앓아 5년 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미혼인 그는 서울역 근처의 원룸에서 친구와 살고 있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렸다 해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는 "아내와 자식들은 내가 복지원 출신인 줄 모른다"며 "조그만 사업도 하고 밥벌이도 제대로 하고 있으니 가족들이 평생 그 사실을 몰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다음달 8일 국회에서 2차 피해증언대회를 연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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