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공감' 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제시문 (가), (나), (다)를 읽을 수 있다. (가)의 아이히만 및 (나)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해 보이는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ㆍ50점)
[제시문 가]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책임자인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가 이스라엘 비밀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검사 : 피고인의 본명은 칼 아돌프 아이히만, 1939년에서 1945년까지 나치스 계획의 집행 책임자로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증인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증인 : 제가 본 피고인은 유태인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태인 이민자들을 위해 직업학교도 세우는 등 개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검사 : 그렇다면 왜 유태인 학살을 지휘했습니까?
아이히만 : 저는 단지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것은 저의 임무였으며, 저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했을 뿐 입니다.
검사 : 수백만 명의 아이들과 남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나요?
아이히만 : 제가 만약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제시문 나]
포스터 속에 들어 앉아
비둘기는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포스터 속에 오래 들어 앉아 있으면
비둘기의 습성(習性)도 왠만치는 변한다.
비둘기가 노니던 한때의 지붕마루를
나는 알고 있는데
정말이지 알고 있는데
지금은 비어 버린 집통만
비바람에 털럭이며 삭고 있을 뿐이다.
포스터 속에는
비둘기가 날아 볼 하늘이 없다.
마셔 볼 공기(空氣)가 없다.
답답하면 주리도 틀어보지만
그저 열없는 일
그의 몸을 짓구겨
누가 찢어 보아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불 속에 던져 살라 보아도
잿가루 하나 남지 않는다.
그는 찍어낸 포스터
수많은 복사(複寫) 속에
다친 데 하나 없이 들어 앉아 있으니
차라리 죽지 못해 탈이다.
[제시문 다]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 뤼카온은 아킬레우스에게 사로잡힌 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에게 아킬레우스가 이렇게 말한다.)
"자. 친구여. 그대도 죽을지어다. 왜 이렇게 비탄에 빠져 있는가? 그대보다 훨씬 훌륭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나 또한 얼마나 잘 생기고 큰지?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여신이시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누군가가 창이나 또는 시위를 떠난 화살로 나를 맞혀 싸움터에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갈 아침이나 저녁이나 한낮이 다가오고 있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자 뤼카온은 무릎과 심장이 풀어져 잡았던 창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날카로운 칼을 빼어 목 옆 쇄골을 내리쳤다. [중략]검은 피가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다.
*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친구. 트로이아의 영웅인 헥토르에게 살해당했다.
● 예시답안
제시문 (가), (나), (다)의 공감은 모두 생명에 대한 공감으로서, (가)에서는 선량한, 즉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개인이 권위와 명령에 자유의지를 떠맡김으로서 생명에 공감하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에서는 생명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모습으로 전락해 공감할 수 있는 특성을 잃어 버린 대상에 관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다)에서 아킬레우스가 보이는 공감의 양상은 위의 두 지문에서와 사뭇 다른데, 위의 두 지문이 공감에 실패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면, (다)에서는 상대의 죽음을 이해하면서도 그 죽음을 절대적인 운명으로 상정하고, 아킬레우스 본인을 특정한 개인이 아닌 운명의 집행자로 설정함에 따라 개별 대상에 대한 공감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제시문 (가), (나), (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자유의지의 개념과 연결된다. 어떤 대상의 기분이나 상태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주체성을 가지고 상대를 읽어내야 하며, 그를 위해 나와 대상이 모두 주체적인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데, (가)에서 아이히만이 권위에 책임을 떠맡김으로서 '자유로부터 도피' 했으며, (나)에서는 대상이 '자유를 상실해' 공감할 수 없었던 반면 (다)에서 아킬레우스는 자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서 공감에 실패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뤼카온에게 찾아온 죽음은 언젠가 찾아올 바로 그 죽음이며 아킬레우스는 죽음의 궁극적 원인이 아닌 형태에 불과해진다. 제시문 (가)와 (나)가 서로 다른 개인 간 공감의 존재를 전제로 각각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공감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제시문 (다)는 모두를 똑같은 운명의 대상자로 파악함으로서 공감이 무의미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송주영ㆍ서울 영일고 졸업
● 문제 분석과 답안 총평
2014학년도 연세대학교 수시 1차 인문계열 논술고사 1번 문항에서는 친숙한 주제와 익숙한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 동안 대학별 논술 고사에서 자주 출제된 '공감'이라는 주제를 또 다시 출제하여 논술고사의 주제는 반복된다는 법칙을 입증했다. 학생들이 주제 찾는 시간을 줄여 주기라도 하려는 듯 아예 '공감' 개념을 실마리로 하라는 요구사항을 논술 문제에 삽입하였다. 이번 문제에서는 희곡, 시, 소설 등의 다양한 형식의 글들을 읽고 그 내용을 적절히 파악하는 한편. 제시된 글들을 비교ㆍ분석하여 문제가 요구하는 수준의 '공감'이라는 추상적 개념화에 도달하는 능력을 측정하고자 하였다. 문제를 살펴 보자.
'공감' 개념을 실마리로 삼아 제시문 (가), (나), (다)를 읽을 수 있다. (가)의 아이히만 및 (나)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비교하여 (다)의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대해 보이는 태도의 특징들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을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제시하시오. (1,000자 안팎으로 쓰시오. 50점)
전형적인 3개의 제시문을 비교하는 3자 비교이다. 주어진 3개의 제시문은 공감하는 능력과 관련된 다양한 양상들을 기술하고 있다. 제시문들은 각 주인공인 아이히만, 시적 화자, 아킬레우스가 대상의 감정에 공감하는 태도를 각기 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비교하면 되는 문제이다. 단, 제시문을 보이는 그대로인 평면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그 근거 또한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공감'하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 가는 듯하다. 온라인을 이용한 네트워크에서 SNS 등과 같은 커뮤니티 등에서 소통을 하는 양은 많아졌지만 정작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오히려 그 반대로 낮아진 듯하다. 즉, 소통을 위한 기술은 향상되는 반면 소통에 필요한 공감 능력은 기술 발전에 반비례하는 듯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카페에서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친구가 눈 앞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눈과 손은 스마트폰에서 떼지를 못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세계에 있는 친구에게 공감하는 것이 현실에 있는 친구와의 공감보다 중요하고 쉬운 듯 보인다.
공감에서 요구되는 태도는 상대와 소통하려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태도는 정작 상대를 바라보는 태도이다. 사람마저 상품화되어 가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나' 이외의 대상을 주체의 필요에 의한 '그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너'를 또 다른 '나'로 바라보려는 태도, 즉 타자인 '너'를 또 다른 주체인 '나'로 인정하고 대상인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진정으로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연세대학교에서 요구하는 '공감' 문제를 이해하고 풀이하는 데에 필요할 것이다.
제시문을 살펴보자. 먼저 제시문 (가)에서는 공감 능력의 결핍을 보이는 아이히만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히만은 유태인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위한 직업학교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공감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아이히만이 유태인들을 오로지 훈육과 규율의 대상으로만 보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아이히만이 유태인들을 하나의 올곧은 주체로 대하지 않고 주체와는 차별되고 구별되는 타자로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아이히만은 자신이 국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타자의 처지를 상상하고 타자와 공감하는 진정한 주체가 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이 국가나 민족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사실에 공감하여 집단 외부의 타자에게 아무 반성 없이 폭력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제시문 (나)에서는 시적 화자가 시적 대상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포스터는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의 감정이입적인 공감이 성립되고 있는 공간이다. 화자는 포스터 속에 갇힌 비둘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자기의 무기력함과 답답함을 투영하고 있다. 비둘기는 구겨도, 찢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불 속에 던져 살라 보아도 잿가루 하나 남지 않는다. 그렇다고 날아 볼 하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숨 쉴 공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죽지 못해 포스터 속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무기력하고 답답한 포스터 속 비둘기의 모습이 화자는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생명력으로 충만한 자연의 비둘기처럼 살아가지 못하는 포스터 속 비둘기가 자신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즉 화자는 포스터 속의 비둘기에 상상력으로 공감하는 반면 생명력이 충만한 자연에서 노닐던 시절의 비둘기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자유롭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훅릴楮置構?있다.
제일 분석하기가 까다로운 지문이 바로 (다) 제시문이다. 공감을 하고 있지 못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제시문 (가)와 공감의 태도를 나타내는 제시문 (나)는 수험생들이 분명히 명확하게 해석을 할 수 있는 지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시문 (다)는 그렇지 않다. 제시문 (다)는 공감과 관련해 제시문 (가)와 (나)에 나타난 태도를 모순적으로 종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의 장수 뤼카온을 적으로서 죽이지만, 아킬레우스 자신도 죽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실존성을 수용하고 뤼카온에게도 이해시킨다는 점에서 타자에 대한 공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제시문 (다)에서 아킬레우스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뤼카온을 죽인다. 이는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한 면만을 찾아 낸다면 수험생들은 제시문 (다)를 제대로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수험생들이 더 찾아 내야 하는 사실들은 아킬레우스가 뤼카온에게 건네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뤼카온을 죽이는 행동은 심층적으로 살펴 볼 때 전쟁에 나온 군인으로서 적을 죽일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상호 동의하에 관철하려는 행동이라는 점이다. 둘째, 적을 죽이는 행동의 당위성에 대해 공감을 얻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존재의 필연성에 대한 보다 깊은 공감을 환기하고 같은 인간으로서 이에 동의할 것을 촉구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뤼카온이 창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주저앉은 것은 이러한 아킬레우스의 논리에 설득되었음을 표현한다. 따라서 아킬레우스의 폭력은 타자를 오직 배제하는 제시문 (가)와 타자와 오로지 동일화되기만 하는 (나)의 단선적이고 단면적인 태도를 벗어난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토대로 수험생의 답안을 살펴 보자. 수험생의 답안에서는 문제의 핵심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답안에 들어갈 핵심 내용은 제시문 (다)의 공감의 모순적 양면성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 (나)에 나타난 공감의 대조적인 단면성과 비교하는 내용이다. 그나마 잘 작성한 내용이 제시문 (가)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도입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수험생이 논술 공부를 하면서 '아이히만'에 관한 지문을 워낙 많이 접한 탓에 '아이히만=자유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 사례'라는 배경 지식을 쌓은 탓으로 보인다.
그 이외의 내용을 보자. 제시문 (나)를 작성한 내용에서는 시적 화자가 포스터 속 비둘기에게 공감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논술고사에서는 시를 해석할 때 시적 대상도 중요한 해석의 요소이지만 정작 시적 화자 또한 중요한 해석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한 데에서 비롯된 결과라 볼 수 있다. 답안에서는 (가)에 이어 (나) 또한 공감에 실패한 모습을 보여주는 제시문이라 작성하여 출제의도와는 거리가 먼 답안이 되었다.
또한 제시문 (다) 역시 아킬레우스를 운명의 대상자로 설정하여 개별 대상들에 대한 공감을 무의미해지게 만든다는 주장을 펼쳐 이 또한 출제의도와는 거리가 먼 답안이 되었다. 답안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의 장수 뤼카온을 적으로서 죽이는 행동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살인은 정당함을 역설하나 아킬레우스 자신도 죽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실존성을 수용하고 이와 같은 사실을 뤼카온에게도 이해시킨다는 면에서 타자에 대한 공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박근형ㆍ종로학원 논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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