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에 500여발의 포탄을 쏘며 해상사격훈련을 감행한 데는 다양한 군사적ㆍ정치적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한반도 상황에 대한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짙다.
NLL 넘어선 100여발이 백령도 해역에 집중된 까닭
북한은 이날 500여발의 포탄을 쏜 해상사격구역으로 설정한 1~7번 구역 중 유독 백령도를 끼고 있는 2번 해역에서만 100여발이 NLL 남쪽으로 넘어왔다. 백령도를 위협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 해역은 지난 27일 밤 우리 해군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한 곳이다. 우리 측은 나포 후 6시간 만에 북측에 돌려보냈지만 북한 당국은 28일부터 연일 북한 어부들에 대한 우리 해군의 폭행과 귀순종용을 주장하며 협박을 계속해왔다. 북한 총참모부는 지난 28일 "야수적인 만행에 대해 절대 스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노동신문은 31일자에서 "천인공노할 깡패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제하 기사에서 "백령도를 잿가루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적의를 드러냈다. 우리 군 당국은 "젊은 어부들이 몽둥이와 횃불을 휘두르며 위협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제압한 것"이라며 "나포 당시 동영상도 확보하고 있어 북측의 억지주장에 진실을 다툴 여지는 적다"고 했다.
다목적 포석의 포격 도발
물론 북한 어선 나포 사건이 도화선이 됐을 수는 있지만 북한이 도발의 필요성을 느낄만한 여러 요인이 있다는 점에서 다목적 포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한 이날 포항 일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1만2,500여명이 참가하는 한미 해병대의 연합상륙훈련이 실시됐다. 우리측이 동해에서 유사시를 가정한 군사훈련을 할 때 북측은 서해에서 NLL을 건드리며 화력시범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군 관계자는 "한창 동계훈련 중인 북한이 한미 양국군의 대규모 상륙훈련을 보면서 가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측의 대응태세를 시험하려는 목적도 짙다. 한미 군 당국이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서북도서사령부를 창설하고 국지도발 대비계획을 전면 개편해 강경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 실전에 적용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또 4월부터 서해 꽃게잡이 성어기에 접어든다는 점에서 이번 훈련은 남측을 향한 심리적 압박 효과도 있다.
대외관계의 주도권을 노린 정치적 계산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대북 3대 제안을 통해 통일구상을 구체화하며 북한을 옥죄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의 반영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측이 어떤 제안을 내놓아도 당분간 호응할 의지가 없다는 점을 이번 도발을 통해 강력하게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내다봤다.
여기에다 최근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규탄 성명 등 국제사회의 압박에 반발하면서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한 제스처이기도 하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한미 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북한의 무력대응에 따른 피로감을 가중시켜 대화와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심산"이라고 분석했다.
또 31일은 북한이 생존논리인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로 내부를 결집하고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효과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예고된 도발 왜?
북한은 이번 도발을 감행하면서 이례적으로 해상사격훈련 구역을 미리 우리측에 통보하며 절차를 밟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있는 일로 강한 충격을 줘서 존재감을 과시하되 상황이 더 악화되기는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던진 것이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동해상의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국제사회가 북한을 규탄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예고 없이 사격훈련을 감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번 북한의 예고된 훈련은 향후 갑작스런 도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복선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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