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넘치는 '앙코르 세례'로 한국 관객들에게 기억되는 예프게니 키신(43)이 대가의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로서 성숙하고 절제된 무대로 기분 좋은 반전을 선사했다. 그에게 힘있는 타건만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 준 자리였다.
3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키신은 2006년과 2009년의 독주회가 그랬듯 관객을 홀렸고 객석에서는 록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기립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이전 두 차례의 내한 독주회가 10곡의 앙코르 등 갖가지 진풍경으로 관심을 모았던 것과 달리 이번 무대에 대한 찬사는 오롯이 다채로운 색채로 일궈 낸 그의 완성도 높은 연주에 관한 것이었다. 평생 천부적인 재능으로 조명 받았기에 구태여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지 않았을 그가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을 거듭해 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관객은 '마라톤 앙코르'의 만족도보다 더 큰 희열을 느꼈다.
그는 우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7번을 들고 나온 전반부 연주로 단조롭게 들리기 쉬운 슈베르트 곡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완벽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음 한 음 쌓아 올린 키신의 연주는 슈베르트 곡 중 상대적으로 대중에 덜 알려져 있는 피아노 소나타 17번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했다.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2번과 연습곡 작품 8로 구성한 후반부는 러시아 태생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자신감 넘치는 무대였다. 절정의 기교와 감성이 빚어낸 편안한 연주에 원곡의 복잡한 음계 구조를 잊을 정도였다.
키신은 끊임없이 그를 무대로 불러내는 청중의 환호에 바흐의 '시칠리아노', 스크랴빈 연습곡 작품 42-5,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로 답했다.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가 끝난 후에는 관객 대부분이 기립 박수로 열광했다.
장시간의 앙코르는 없었지만 연주회 마무리가 늦어지기는 이전 내한 공연과 마찬가지였다. 예술의전당 음악당 로비를 한 바퀴 빙 둘러 늘어설 정도로 긴 행렬의 관객이 모인 팬 사인회가 끝나자 자정이 다 됐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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