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3시간 넘게 사격훈련을 벌인 31일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해5도 주민들은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지만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던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4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꽃게 조업을 시작하는 이 지역 어민들은 자칫 남북관계가 경색돼 조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해병대 백령부대는 이날 낮 12시15분쯤 북한의 해상사격 훈련이 시작되자 낮 12시30분쯤 백령도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연평부대도 낮 12시40분쯤 안내방송을 해 연평도 주민들을 대피소로 이동시켰다.
연평도 주민 강명성(66)씨는 "낮 12시가 넘어 포 소리가 들렸고, 주민들이 대피소로 이동했다"며 "대피소에서 10분마다 주기적으로 포성이 들렸지만 크게 동요하는 주민은 없었다"고 말했다.
백령도 주민 홍남곤(48)씨는 "우리 군 사격훈련 때보다 포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포탄이 '쉬잇'하고 날아오는 소리까지 들려 주민들이 많이 놀라고 분위기가 한때 심각했다"며 "그래도 북한이 기습적으로 사격을 한 것이 아니라 미리 통보한 사격훈련이었기 때문에 큰 염려는 안 했다"고 말했다.
연평도와 백령도 주민 대부분은 해병대원과 면사무소 직원들의 통제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소로 이동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오후 3시쯤엔 백령도 주민 5,600여명 중 3,000여명이 23개 대피소로 분산돼 상황을 지켜봤고, 연평도에서도 주민 1,230여명 중 630여명이 13개 대피소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대청도와 소청도에서도 주민 일부가 대피했다.
서해5도 학생 500여명은 교사들의 안내에 따라 학교 내ㆍ외부 대피소로 이동했다. 연평도에선 점심 식사를 하던 학생들이 급하게 대피하기도 했다. 서해5도 초ㆍ중ㆍ고교는 이날 비상상황이 종료된 뒤 방과후학교 등 나머지 수업은 하지 않고 학생들을 귀가 조치했다.
주민들은 포성이 그친 오후 3시30분 이후부터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거나 일상으로 복귀했다. 군 당국은 이날 오후 4시30분쯤 서해 5도 일대에 내린 주민대피령을 해제했다.
북한의 사격훈련 때문에 백령도와 연평도행 여객선 운항이 통제되면서 인천시내에 나와 있던 서해5도 주민들은 발이 묶인 채 섬에 남아있는 가족 걱정에 TV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연평도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김영식(63)씨는 "오후 1시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할 예정이었던 연평도행 여객선의 운항이 전면 통제돼 뭍에 나와있는 주민들 발이 묶인 상황"이라며 "섬에 있는 후배를 통해 상황을 전해 듣고는 있지만 혹시나 가족들이 다칠까 걱정돼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8시 50분쯤 인천항을 출발한 백령도행 여객선 하모니플라워호(2,071톤급)는 사격훈련이 시작된 직후 대청도에 비상 정박했다가 오후 늦게 백령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여객선은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에 낮 12시50분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당시 승객 367명 가운데 소청도에서 먼저 내린 16명을 제외한 승객 351명은 여객선에서 내려 대청도에 대피하기도 했다.
해군과 해양경찰이 오전 10시쯤 조업중인 어선에 복귀 명령을 내려 이른 아침부터 서해상에서 조업하던 어선들도 급하게 대피했다. 대청·소청도 20척, 백령도 16척, 연평도 7척 등 총 43척의 출항 어선은 복귀 명령에 따라 오후 1시쯤 인근 항구로 되돌아왔다.
해경 관계자는 "조업 통제 조치는 풀렸지만 1일 조업이 가능할지 여부는 날씨 등을 감안해 내일 오전 6시쯤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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