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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지는 6·4 구도

입력
2014.03.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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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치러진 6ㆍ4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포함한 10개 광역단체장직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야당은 6개만 얻었을 뿐이다. 시장과 군수, 구청장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여당이 232개 선거구 가운데 113곳(48.7%)을 승리하면서 절반 가까이를 점령했으며 야당은 74곳(31.9%) 승리에 머물렀다. 투표율은 52.7%로 저조했다.'

1일 만우절에 맞춘 6ㆍ4 지방선거의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1998년 6월 4일 제2회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실제 결과의 일부다. 당을 특정하지 않고 여야로 구분한 것은 당시 야당은 한나라당 하나였지만 여당은 DJP연합으로 정권을 잡은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의 연대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6ㆍ4 지방선거를 60여일 앞둔 요즘 야권은 선거일도 똑 같은 16년 전의 6ㆍ4 지방선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당시 선거가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정치권의 통설을 뒤엎은 유일한 사례였다는 점에서 야권은 선거 역사를 새로 쓰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분위기다.

신장개업한 새정치민주연합이 패닉에 빠진 이유는 모두 '기초선거 무공천'논란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지만 새누리당이 공약을 번복했고 구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통합까지 감행하면서 무공천을 선언하는 바람에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현 상태로 선거를 치른다면 기호 1번을 유지하게 되는 새누리당 후보들이 무더기 무소속 출마가 불가피한 신당 출마자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게 뻔하다. 때문에 신당 내부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등 현실론을 들어 무공천 선언 재검토 주장을 제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쯤 되면 정치는 참 알다가도 모를 판이다. "기초공천 폐지는 위헌 등 부작용이 크다"며 공약을 뒤집은 새누리당이 "무공천은 정당 정치의 포기"라며 야당에게 공천을 유혹하고, 신당이 새정치 약속과 선거 참패라는 현실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꼴은 극히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다. 약속을 버젓이 파기한 쪽은 멀쩡한데 파약(破約)당한 쪽은 내홍 직전까지 이른 상황 자체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현재로선 신당 지도부가 입장을 번복하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통합의 고리가 된 약속을 뒤집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론을 좇아 공천을 한다고 한들 필승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기초선거 지역구별로 야권 단일화를 시도하자' '인구 10만 이하는 무공천하는 방안을 여당과 협의하자' 는 등 각종 아이디어가 속출하지만 지도부가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방안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30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당공천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회담을 요청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도부는 정부 여당을 향해 '무공천 공약 준수'를 외치며 전국에서 '기초선거 공천폐지' 서명작업에 들어갔고 일부는 서울시청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는 강수까지 두고 나왔다. 신당이 이른바 '약속정치 대 거짓정치'프레임을 제시한 것이다.

정치가 생물이듯 선거도 구도에 따라 승패가 움직인다. 2010년 지방선거의 경우 천안함 사건으로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한나라당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됐지만 북풍(北風)이 역풍(逆風)으로 바뀌는 바람에 도리어 민주당이 승리했다. 이번 선거의 경우 안 대표와 신당 지도부의 승부수가 핵심 변수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지만 일단 구도는 선명해졌다.

하지만 신당이 제시한 프레임에선 2% 부족함이 묻어난다. 안 대표의 진정성이다.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며 지방선거 완주 의사를 고집하던 안 대표가 돌연 민주당과 손을 잡은 게 불과 한달 전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은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안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동의하겠는가. 안 대표가 먼저 자신의 약속 파기를 해명하거나 사과하는 게 순서 아닐까.

김정곤 정치부 차장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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