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던 악덕 기업사냥꾼이 잠적했다가 다른 사건으로 법정에 나와 현장에서 체포된 뒤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는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제조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를 무자본으로 인수한 뒤 수백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 등으로 최모씨를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업계에서 '전문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는 최씨는 동일 수법으로 다른 회사의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 중이며 검찰은 재판에 나온 최씨를 최근 긴급 체포해 구속했다.
검찰과 업계에 따르면 최씨는 2012년 사채업자 등을 동원해 디지텍시스템스를 사들인 뒤 남모(39) 전 경영지원본부장 등 회사 임원과 공모해 회사와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 등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회사 돈을 횡령하거나 페이퍼컴퍼니의 대출 지급보증을 디지텍시스템스가 하도록 꾸미는 수법으로 회사에 600억~700억원 가량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최씨가 남씨 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사채업자를 소개시켜 준 뒤 빌린 돈을 변제하도록 하고 그 중 일부를 가로채는 등 이번 범행을 사실상 주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남씨와 정모 전 대표 등 회사 전직 임원 두 명은 이달 초 300억여원 횡령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가 돼 공범 여부에 대해 계속 검찰 조사를 받아왔다. 남씨 등도 '최씨 주도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2006년 코스닥 상장사인 ㈜고제를 인수하는 과정에 개입해 70억여원을 빼돌려 챙긴 혐의로 기소돼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최씨는 자금이 부족한 회사 인수 희망자에게 접근해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리도록 한 후 채무 변제 명목으로 받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거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회사 자금을 빼돌리도록 강요하는 등 이번과 동일한 수법의 범행을 저질러 2011년 3월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최씨는 특경가법상 횡령으로 2010년 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확정 판결을 받아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다.
검찰은 이달 초 남씨 등을 기소한 직후부터 최씨를 소환해 곧바로 사법 처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2012년 말 보석으로 풀려났던 최씨는 올 2월 초 예정됐던 재판에 불참한 채 잠적했으며 이달 중순 법정에 나왔다가 검찰에 곧바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최씨 등이 삼성전자의 매출채권을 위조해 미화 1,720만달러(한화 180억원 상당)를 사기 대출받았다며 한국씨티은행이 고발한 사건도 들여다보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추가 조사해 공모자나 다른 범행이 더 있는지 확인한 뒤 최종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1차 납품업체로 코스닥 상장사인 디지텍시스템스는 2012년 2,30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최씨의 주도로 회사가 남씨 등에게 인수된 후 경영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현재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주식 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이며 곧 상장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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