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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나쁜 규제 제보→ 부처는 이유 설명→설명 못할 땐 폐지·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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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나쁜 규제 제보→ 부처는 이유 설명→설명 못할 땐 폐지·개선

입력
2014.03.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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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게에서 오븐 세척제를 판다고요? 독극물 관리 면허가 있나요? 없다고요? 영국에선 불법이에요."

최근까지 영국에선 독극물 면허가 없는 사람은 세척제를 팔 수 없었다. 비대한 관료체계가 만든 이 과도한 규제가 지금은 폐지됐다. 시민들이 나쁜 규제를 발굴하는 영국의 규제개혁체계 '레드 테이프 첼린지(Red Tape Challenge·RTC)'가 이룬 성과다.

RTC는 영국 정부가 2011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진행한 참여형 규제개혁체계다. 주부, 기업가 등 시민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쁜 규제를 제보하면 정부는 개선안을 내놨다. 해당 규제를 만든 부처는 3개월 안에 규제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못하면 규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RTC 도입 당시 영국 정부는 나라 전체가 규제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한 채 죽어간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규제가 2만1,000개에 달해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컸으나, 관료가 주도하는 규제개혁은 좀처럼 속도를 못 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영국 정부는 2011년 규제비용총량제 도입과 함께 RTC를 시작했다. 불편을 느끼는 시민이 직접 규제를 제보해 이를 고치도록 강제하고부터 개혁이 빨라졌다. RTC는 농업 소매업 환경 등 29가지 대주제로 규제를 분류한 후 2, 3주에 주제를 한가지씩 선정해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시민의 참여를 유도했다. 결국 시민은 다른 시민이나 당국자와 토론하며 대안을 제시했고 정부는 이를 개선안에 반영했다.

오븐 세척제 규제 개선은 피터 존슨씨가 "안전 규제가 너무 복잡하고 정말 위험한 제품을 거르기보다 절차를 지키는 데 목적이 있어 보인다"는 글을 2011년 4월 12일 소매업 게시판에 올린 데서 출발했다. 또 다른 제보자 론 킹씨는 "있는지도 몰랐던 규정이 소매상인을 범법자로 만든답니다"라는 제보를 통해 너무 작게 쓰여 있고 내용도 복잡했던 소비자 보호 규정을 단순화했다.

RTC 운영 기간 동안 민간 영역에서 3만건이 넘는 제안이 쏟아졌다. 정부는 29개 주제에 담긴 규제 5,662개 중 54%(3,095개)를 폐지하거나 개선했다. 재계는 해마다 규제 탓에 치르던 비용 8억5,000만파운드(약 1조5,000억원)를 아끼게 됐다. 또 1,376개의 규제는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도 RTC와 비슷한 시기인 2011년부터 '규제개혁신문고'를 운영하고 있다. 방식도 RTC와 비슷하다. 시민이 문제제기를 하면 규제개혁위원회와 각 부처가 협의해 규제를 개선한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규개위가 내세우고 있는 건의처리 주요 성과는 고작 10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동안 모두 몇 건이 개선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간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했고, 개선 방식도 제안 수용 여부를 시민에게 통보하는 소극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규개위 관계자는 "3년 동안 접수한 제안이 1,640건인데 그중 500건이 지난 20일 끝장토론 뒤에 쏟아지고 있다"면서 "그 동안 규제 제안 처리는 부수적인 업무였는데 갑자기 시민 관심이 뜨거워져, 규개위나 해당 부처 모두 인력이 없어 큰 일"이라고 밝혔다. 현재 제안 접수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1명뿐이다.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민은 관료가 못 보는 생활 속 규제를 찾아낸다"며 "국무조정실에 딸린 위원회에 불과한 규개위를 승격시키고 전문인력을 보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규개위가 실제로 힘을 발휘해야 시민 관심도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레드 테이프

'레드 테이프'는 '행정이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는 현상'을 말한다. 17세기 영국에서 생겨난 용어로 당시 영국 관청에서 공문서 뭉치를 꿰던 테이프가 붉은 색이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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