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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3월 31일] 하얀 만우절

입력
2014.03.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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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어렵겠어. 생일을 다시 맞이하지 못할 것 같구나." 아버지가 생신 때면 꼭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면 자식들은 "30년은 너끈하실 것입니다"고 답한다. 이런 문답이 오간 지가 어림잡아 2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올해도 그랬다. 지난 토요일(29일) 강원도 고성의 한 농가식당에서 가진 90회 생신 축하 점심에서 아버지는 예의 비장한 표정으로 그 말씀을 또 했다. 다들 빙긋이 웃으며 "백수(白壽ㆍ99세)는 충분하실 겁니다"고 화답했다.

■ 세상에서 본심과 다른 얘기 세 가지를 꼽으라면,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것, 노인이 "빨리 가고 싶다"고 하는 것, 상인이 "밑지고 판다"고 하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노인이나 처녀의 푸념에 진지하게 동조하거나 맞장구 치면, 당사자는 실망하기 마련이다. 때론 상대와 주변을 기쁘게 해주는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의 '아버지 백수론'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그 날 밥 한 그릇을 다 드실 정도로 건강했다.

■ 내일(4월 1일)은 만우절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을 쳐도 나무라지 않는다는 날이다. 한자로는 '萬愚節'이다. '만 가지 어리석은 짓을 하는 날'이나 '모두가 바보가 되는 날' 정도로 풀이될 것 같다. 하지만 만우절은 법적으로 공인된 명절이나 기념일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과도한 장난이나 거짓말을 하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수 있다. 특히 119나 112를 통해 거짓으로 "불 났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했다가는 처벌받을 수 있다.

■ 112 허위신고는 경범죄에 해당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나 과료형을, 공무집행방해에 해당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119 허위신고는 소방기본법에 따라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고 소방관이나 경찰관들의 고생을 생각해 허위 전화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부모님이나 연인에게 "백수 잔치 꿈을 꿨다", "갈수록 예뻐진다"는 하얀 거짓말을 해서 만우절을 즐겁게 보내면 어떨까 싶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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