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순방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독일에서 "일본의 전쟁시 폭행이 아직도 눈앞에 역력하고 기억에 생생하다"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3,500만명을 살상하고 난징(南京)에서 무려 30여만명을 학살했다고 공개 비난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국제무대에서 일본 과거사를 이처럼 강하게 비난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시 주석은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1940년대 아편전쟁 이후 100여년 간 중국 사회는 내전과 외침에 시달린 사실을 언급하며 "일본 군국주의는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켜 중국 군민 3,500여만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인간 참극'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시 주석은 "역사는 제일 좋은 선생님으로, 이 같은 참극의 역사가 중국인의 뼈에 사무치는 기억을 남겼고 평화발전의 길을 선택하게 했다"며 "중국인은 자신에게 싫은 것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언급은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가진 나라라는 점을 국제 사회에 환기시키고 반대로 피해자인 중국은 평화의 길을 걷을 것이란 점을 역설한 것이다.
시 주석은 나아가 중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욘 라베를 거론하며 "70여년 전 일본이 난징시를 침략해 30여만명의 중국인을 학살하는 전대 미문의 참상을 저질렀을 때 라베는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난징안전구'를 설립, 20여만명의 중국인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라베는 자신의 일기에 대학살 내막을 상세하게 기술했고 이는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증거"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강연 마지막에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년, 제2차 세계대전 75년이 되는 해"라며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영혼에 병이 든다'고 말했고 중국에도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는다'(前事不忘 后事之師)는 말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주일 중국 공사를 불러 항의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시 주석의 '30여만명 학살' 발언과 관련해 30일 "숫자에는 여러 의견이 있다"며 "중국 지도자가 제3국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비생산적인 일로 지극히 유감"이라고 비난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도 시 주석의 발언을 비중 있게 전하며 양국의 난징대학살 관련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시 주석의 아우슈비츠 추모관 방문을 거절한 독일 역시 일본과 역사문제를 노골적으로 제기하는 중국이 불편한 모양새다. 미카엘 클라우스 주중 독일대사는 29일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우리의 역사에 대한 접근방식이 중국과 일본간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되는 것을 보고 싶진 않다"면서 "그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독일 언론들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지도자들이 시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 인권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을 더 비중 있게 거론했다. 메르켈은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대화에서 인권에 관한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면서 "폭넓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사회의 창의성을 증진하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고 디벨트가 전했다. 이 신문은 또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이 시 주석과 오찬에서 "시민은 소비자 이상이고 시민이라는 존재는 책임감을 갖고 사회를 함께 형성하는 것"이라며 "독일과 중국은 공통의 규칙을 적용 받는 국제 질서의 부분"이라고 강조한 것도 소개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에 중국이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시 주석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며 불간섭 노선을 유지했다고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지적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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