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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남미 원주민들의 능동적 투쟁, 위기의 진보운동에 답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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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남미 원주민들의 능동적 투쟁, 위기의 진보운동에 답을 주다

입력
2014.03.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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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일 과테말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남단 치아파스 주에서 스키마스크를 쓰고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요 도시들을 점거하고 주지사를 인질로 잡았다. 마침 이날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되는 날이어서 세계의 눈은 모두 이들에게로 쏠렸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이름을 빌려 사파티스타로 불리는 이들은 과거 라틴아메리카 혁명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무엇보다 운동의 리더가 과거처럼 백인 혹은 혼혈인 위주의 좌파 혁명가들이 아니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500년 이상 빈곤과 억압 아래 살아왔던 원주민들이란 점이 충격을 주었다. 사파티스타의 반란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끈질긴 원주민의 생명력

라틴아메리카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했던 원주민의 수는 많게는 1억명, 적게는 3,000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멕시코 원주민 도시 테오티우아칸의 인구는 당시 유럽 로마나 중국 당나라 수도인 장안의 인구와 비슷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복 과정에서 살해되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거나, 노동 착취로 과로사하거나, 혼혈이 이루어지면서 원주민의 수는 불과 150년 만에 95%가 줄었다. 17세기 중반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 인구는 350만명에 불과했다.

500년 넘게 이어진 백인들의 말살과 통합정책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멕시코 유카탄의 정글과 과테말라 내륙 산악지역, 아마존 정글과 안데스 산악지역 등에는 스페인어가 아닌 고유 언어로 말하고, 전통적 복장ㆍ관습을 유지하는 원주민이 적지 않다. 심지어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수는 역내 인구의 6%에 해당하는 3,0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특히 볼리비아와 과테말라의 원주민의 비중은 인구의 절반을 넘거나 그에 육박한다.

원주민운동 태동한 잉카문명 지역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외된 계층으로 살아왔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빈곤의 종족성, 즉 인종에 따른 사회계층 분류는 감출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백인 지배에 말없이 복종해오던 원주민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파티스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같은 옛 잉카문명 지역에서는 이전부터 원주민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볼리비아에서 원주민 운동은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볼리비아 인구의 약 25%를 차지하는 아이마라 족은 그들의 역사적 영웅 투팍 카타리의 이름을 따 카타리스타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기존의 노동자 조직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원주민 공동체를 기반으로 원주민 문제를 원주민의 입장에서 다루는 운동을 조직했다. 아마존 지역 원주민 운동과도 연합한 카타리스타 운동은 1990년대 이후 무시할 수 없는 사회세력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1993년에 집권한 산체스 데 로사다 정부는 볼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이 다종족ㆍ다문화 사회임을 인정하는 헌법을 통과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원주민들에게 공동토지 소유권과 지방정치 참여권을 부여했다. 원주민이 소수라 국가통합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나라들과 달리 원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헌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국가통합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볼리비아의 법적인 원주민 권리 인정은 실현 정도와 무관하게 원주민 운동사에서 과소평가될 수 없는 성과인 것이다.

에콰도르에서도 원주민 운동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에콰도르의 원주민 비중은 국가 공식통계상 38%이지만 많게는 43%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에콰도르 원주민들은 1960년대에 안데스 지역 원주민 운동과 아마존 지역 원주민 운동을 통합한 에콰도르원주민민족성동맹(CONAIE)을 조직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해왔다. CONAIE는 나아가 파차쿠틱이라 불리는 원주민 정당을 설립, 거리의 권력에서 정치권력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파차쿠틱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선거에 참여해 2002년 총선에서는 국회 의석 100석 중 14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같은 해 대선에서는 다른 정당과 연합해 54.79%의 득표로 지지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원주민운동의 꽃, 사파티스타 운동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은 1994년 반란 이후 시민사회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들이 '폭력 전문가'이거나 외세에 조종 받는 세력이 아니라 순수한 멕시코 원주민임을 강조했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초반 무장투쟁 방식을 벗고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지 않는 시민사회운동으로 전환했다. 또한 전위적 좌파 지식인들이 주도하고 원주민들이 수동적으로 따르는 식의 하향식 조직구조가 아닌 원주민 스스로 운동의 리더이자 주체가 되는 수평적 조직구조를 형성했다.

내부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사파티스타 운동이 정부와 협상에서 얻은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원주민의 자치권과 같은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국가적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정부 측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원주민 요구를 반영하는 법안은 2000년 제도혁명당(PRI)의 72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린 후 2001년 4월 많은 수정이 가해진 채로 비로소 국회를 통과했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도 다문화주의를 인정하는 헌법이 통과되고, 원주민의 공동토지 소유권, 자치권 등이 인정되었다. 이들 국가는 국회에서 원주민 의석을 보장해줌으로써 원주민 종족정당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특히 콜롬비아에서 원주민 종족정당은 지정의석 외에 다수의 주지사, 시장, 주의원, 시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 국가의 원주민 인구는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원주민 운동이 이룬 성과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에 비해 결코 작지 않았다.

좌파정부와의 애증 관계

2000년대 초반까지 활성화되었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운동은 좌파 정부의 등장과 함께 다소 주춤하고 있다. 변화의 동력이 정부에 쏠리는 데다가 원주민 지지로 당선된 좌파 정부가 원주민들의 요구와 상반되는 길을 가면서 양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카 재배업자 리더 출신의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헌법에 명시된 원주민의 공동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겠다면서도 원주민 거주 지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해 원주민 공동체와 갈등을 빚었다. 심지어 원주민 운동이 우파의 조종을 받는다고 비판하며 원주민들의 저항을 힘으로 누르기도 했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이끄는 에콰도르 좌파 정부도 원주민 거주 지역에서 석유 및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그에 반대하는 원주민 운동가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기도 했다. 코레아는 석유개발 이익이 사회발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원주민 운동을 유아적이라고 비판한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운동 역시 최초의 반란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 힘이 많이 빠진 상태이다. 마약과 폭력, 경제난 등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한 멕시코에서 원주민 문제가 최우선적 관심 대상에서 밀려나면서 과거와 같은 시민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세계 진보운동에 영감 부여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운동의 동력이 전반적으로 쇠퇴했음에도 운동의 철학은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이 질서를 만들고 정부가 그에 따른다는 사파티스타의 상향식 통치 시스템, 국가 권력 획득 없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그들의 투쟁 방식은 구식 의회민주주의의 대표성 위기에 직면한 진보세력들에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물론이고 스페인ㆍ그리스 시위대 또한 사파티스타의 주장과 구호, 조직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의 원주민 운동이 내세우는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ㆍ원주민어로 '좋은 삶')도 자본주의 발전 패러다임의 대안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좌파 정부가 정책 원칙으로 표명하고 있기도 한 수막 카우사이는 천연자원 파괴와 환경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사회적 진보 모델을 추구한다. 수막 카우사이와 관련된 국제적 공론의 장이 활발히 열리고 있는 현실은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꿈이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김기현 선문대 교수ㆍ스페인어중남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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