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졸고 있는데 저편에서 들뜬 목소리의 중국어가 들렸다. 네 명의 청년이었다. 캐리어 위에 배낭을 얹어두고 노선도를 유심히 살피는 걸 보니 공항을 갓 빠져나온 여행객들인 듯 했다. 그들의 대화가 딱히 쩌렁쩌렁 울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국어라 웅성거리는 잡음 사이에서 확실히 도드라졌다. 승객들 여럿이 그쪽을 줄곧 힐끗거렸고,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들이 내리자마자 혀를 찼다. "중국인들 참, 남의 나라까지 와서 시끄럽기는." 며칠 후 나는 지하철에서 또 한 번 들뜬 목소리의 외국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영어였고, 두 남자와 한 여자였다. 먼젓번의 중국어보다 결코 작지 않은 소리로 웃고 떠들었지만, 그들은 주위를 개의치 않았고 다른 승객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랄까, 영어 정도라면 한국의 공공장소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다는 묵언의 합의라도 이루어진 것처럼. '남의 나라'에서 '자기 말'의 데시벨을 낮추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걸까, 무례한 걸까.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감각은 머리보다 반응이 빨라서, 같은 현상인데도 떠들썩한 중국어에는 예민해지고 떠들썩한 영어에는 심상해진다. 몸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외국어의 위계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공평해지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다. 말하는 사람의 목청 역시 그 위계에 따라 달라지겠지. 나의 한국어는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들릴까. 어느 쪽이 됐든 씁쓸할 것 같다. 시인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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