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연설에서 내놓은 대북 제안은 역대 대통령이 해외에서 발표한 대북 제의 가운데 내용과 수준이 가장 다양하고 구체적이다. 독일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서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내용이 포괄적이거나 당시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북핵 폐기를 상정한 '그랜드 플랜'과 함께 북핵과 연계하지 않은 '스몰 플랜'까지 담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5년 3월 통독 조약이 조인된 베를린 황태자궁에서 내놓은 제의는 '작은 것보다 큰 방향을 중시'하는 김 전 대통령 취향을 반영하듯 포괄적이었다. "북한이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북한에 곡물을 비롯해 필요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 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로 긴장이 완화된 상황에서 나온 이 제의를 수용, 그 해 6월 쌀 15만톤을 받아 갔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6.15 선언'을 3개월 앞둔 2000년 3월 대북 경제 협력을 제안하는 '베를린 선언'을 내놨다.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에서 "남북한 간 정경 분리 원칙에 의한 민간 경협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 당국 간 협력이 필요한 때"라며 대규모 인프라 개발 지원과 특사 교환 등을 제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2011년 5월 독일에서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 달린 대북 제의를 내놨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면, 5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했다. 이 제안은 북한이 핵개발과 실험을 계속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 중 북핵 문제나 5ㆍ24조치와 연계성이 적은 인도적 분야(모자 영양개선 사업)와 농업협력 분야는 북한의 수용 가능성이 높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의 황폐한 산림을 복원하는 것까지 포함한 농업협력은 남북경협 중 가장 많은 연구물이 축적된 분야"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경기도를 비롯해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들이 북한과 한 두 개의 공동사업을 벌인 경험이 있다"며 "북한이 수용만 한다면 농업분야에서는 당장 사업 착수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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