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의 '열린 주총'버핏의 헤서웨이 주총 벤치마킹 주주 가족 초대 토크쇼 스타일로● 신일산업 '닫힌 주총'사측, 소액주주 참여막으려 접근 어려운 외딴곳에서 열어● 고질병은 여전금요일 오전 몰아치기 답습… 전자투표 도입은 '나몰라라'
지난 14일 118개, 21일 662개에 이어 28일 497개사 12월 결산법인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치렀다. 3주에 걸쳐 매 금요일마다 벌어진 세 번의 '슈퍼 주총데이'를 끝으로 이번 주총시즌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한 해 성과를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향후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지만, 올해 주총도 해묵은 과제를 그대로 안은 채 마감했다는 평가다. 특히 3차 주총데이였던 이날엔 전혀 상반된 풍경이 연출됐다.
풀무원에선 7년째 '열린 주총'전통이 이어졌다. 주총 장소는 서울 예장동 '문학의 집.'주총은 1,2부로 나뉘어 진행됐는데, 1부는 각종 안건승인으로 다른 기업 주총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이라이트는 2부였다. 방송인 이익선씨의 사회로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총괄사장과 김영철 전략경영원장이 무대에 앉아, 3자 토크쇼 형식으로 사업현황과 경영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주주자격으로 초등학교 자녀와 함께 참석한 40대 부부는 '바른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서 "수입 원재료 관리방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질문했다. 풀무원 제품에 대한 퀴즈코너도 마련돼, 정답자에겐 상품이 증정됐다.
풀무원은 매년 미국 네브라스카 오마하시에서 축제처럼 진행되는 워렌 버핏의 버크셔 헤서웨이 주총을 벤치마킹해 2008년부터 이런 '열린 주총'을 진행해오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도 나올 수 있는 만큼 회사입장에서는 힘든 진행이지만 오히려 식품회사로서 염두에 둬야 할 사안들을 되새기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각본 없는 주총을 통해 회사의 주인인 주주와 소비자들의 권익 보장에 힘 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닫힌 주총'도 있었다. 선풍기로 유명한 중견기업인 신일산업 주총은 차가 없으면 도저히 가기 힘든, 그나마 길조차 비포장도로인 경기 화성의 한 협력업체 공장에서 개최됐다. 주총공고 때부터 소액주주들은 "사측이 소액주주 참여를 막기 위해 일부러 접근이 어려운 곳을 택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 이 회사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에 휩싸인 상태. 지분 11.27%를 취득한 황모씨는 지난달 특수관계인과 공동으로 적대적 M&A의사를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폐쇄적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올 사람들은 다 참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주총장 주변엔 만약의 충돌에 대비, 경찰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주총에서 황씨는 정관 개정 및 본인을 이사로 선임해달라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부결됐다. 일단 적대적 M&A 시도는 무산된 셈. 하지만 인터넷 등에선 신일산업 주총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과거처럼 주총 분위기를 몰아가는 '총회꾼'이나 회사가 소액주주에 대해 아예 질의기회조차 주지 않는 관행은 많이 사라졌지만, 전문가들은 아직도 고질적 문제점이 많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몰아치기 주총 폐습이다. '슈퍼 주총데이'란 말처럼, 거의 모든 상장사들이 한꺼번에 주총을 치르다 보니 수많은 소액주주들은 참가기회 조차 갖기 힘들다. 거의 모두 금요일, 시간도 오전 8~10시에 집중돼 복수의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소액주주들의 참여기회 확대를 위해 '전자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직접 주총장에 가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표결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이민형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소액투자자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 플랫폼을 한국예탁결제원이 구축해 놓고 있고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엔 기업들이 ▦높은 비용과 ▦전자투표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미뤄왔지만 이젠 어불성설이라는 것. 실제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금처럼 오프라인으로 주주총회를 열 경우 평균 1,072만원이 들지만 전자투표 등 온라인으로 주총으로 열 경우 최대 500만원이면 족하다.
업계는 내년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전자투표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 증권수탁기관인 증권예탁결제원이 '섀도보팅'을 통해 정족수지분을 채워주는데, 내년부터 이 제도가 페지되면 기업들은 주총 성립을 위해서라도 전자투표를 통한 소액주주 참여를 독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기업관계자는 "전자투표 등의 큰 원칙엔 동의하지만 이 경우 소액주주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 등 현실적 애로가 예상된다. 이에 대한 보완책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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