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50)의 소설은 대체로 달달해서 '소녀취향'이라는 딱지가 흔히 붙지만, 그 단맛이 '감미롭다'라는 상급의 형용사에 제법 어울릴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두 자매를 주인공 삼아 고독과 고독을 맞댈 때의 온기를 그린 신작 소설 도 그 중 하나로 거론될 만하다.
가난하지만 다정하고 유쾌한 젊은 부부는 두 딸을 낳아 도토리(돈구리)라는 이름을 나눠 붙인다. 언니는 돈코, 동생은 구리코. 젊었던 아빠는 아내가 산고를 치르는 동안 산부인과 병원 뒤뜰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고, 발랄했던 엄마는 둘째도 딸을 낳기로 작정한 듯 도토리 자매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할당한다. 하지만 부부는 생선배달 트럭에 치여 세상을 떠나고, 자매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기를 보낸다. 가난하지만 화목했던 삼촌네, 부유하지만 삭막했던 이모네, 괴팍하고 퉁명스럽지만 사랑이 깊었던 할아버지네를 거쳐 이제 30대 전후에 이른 자매는 둘만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부모 없는 삶은 자매에게 너무 많은 내상을 입혔다. 화자인 구리코의 말처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모든 연애관계의 원형이다. "부모 자식 사이의 대화는…마치 남자와 여자가 침대 속에서 나누는 대화 같군, 생각하다 퍼뜩 깨달았다. 모두들 부모가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연애에도 그 그리운 마음을 끌어들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로맨스를 추구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 가면서 부모가 그리운 마음도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다…나는 나의 외로움을 살며시 껴안는다."
"연애가 시작될 때를 좋아할 뿐"이어서 결혼은 안중에도 없이 새로운 남자들을 만나대는 언니와 중학교 시절 첫사랑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진중하고 차분한 동생은 상반된 성격을 십분 활용해 '도토리 자매'라는 이메일 회신 사이트를 만든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누구든 자매에게 이메일을 보내면 글재주가 있는 언니가 답장을, 꼼꼼한 동생이 회원 관리를 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진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사람들은 두서없는 대화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지지해 주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언니는 "지금 누군가가 내게 푹 빠져 있다는 이 느낌"은 "부모님이 있었을 때의 느낌"이자 "언제까지나 계속되면 좋겠지만, 대개는 사라져 버리는 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탈당한 어린 시절은 복원, 재현될 수 있다. "보이지 않지만, 가늘고 확실한 흐름으로 모두가 연결"돼 있는 이 세계에는 위로와 연대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연결 고리 속에서는 미약하게나마 언제나 온기가 발생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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