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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장학회, 규모는 작아도 열정은 겁나게 뜨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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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장학회, 규모는 작아도 열정은 겁나게 뜨겁죠"

입력
2014.03.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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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볼품없는 장학회지만 순수한 열정만은 여느 장학회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벌교 장학회'라고 있다. 작가 조정래의 대하 장편소설 의 주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그 '벌교' 장학회다. 이름 없는 출향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고향 출신 청소년들에게 학비며 생활비 일부를 보태는, 전국 어느 시도읍면에나 있을 법한 그런 특별할 것 없는 장학회. 그 장학회를 이끌고 있는 장건(42)씨의,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사연이다.

7남매의 막내인 장씨는 5살 때 부모를 병으로 잃었다. 친척집에 얹혀 살며 눈칫밥을 먹었고, 독립해서는 누이가 편지봉투에 사온 한 줌 쌀로 형제들이 끼니를 이은 적도 있고, 연탄과 쌀을 훔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다 폭력으로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고향 벌교의 기억은 그렇게 신산했다. 그는 "왜 좋은 데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원망만 가득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갓 스물이 되던 해에 그는 벌교를 등졌다. "서울에 올라오면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고, 뭔가 할 일이 있을 줄 알았어요."하지만 서울도 그에겐 차가웠다. 도움을 청할 곳도, 기댈 곳도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갖게 된 한 여대생이 자신을 흔들어놨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떳떳해지고 싶더군요. 당시에도 폭력 혐의로 수배 중이었어요. 자수해서 1년 징역 살고 나왔죠. 검정고시도 봤어요."

2007년 그는 한 영화 관계자의 주선으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영화를 보면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고, 내 초라한 모습을 잊을 수 있었어요." 2011년 민병진 감독의 영화 '우리 이웃의 범죄'등 제작을 거들기도 했다. "영화를 하면서 비로소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씨는 현재 작은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다.

"먹고 살만 하니까 그제야 고향 생각이 나더군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하고 뒤돌아보니 그래도 생각나는 건 도움 준 고향 친구 고향 이웃이었어요."수소문 끝에 모여든 친구 10여명이 '뭔가 해보자'해서 만든 게 2010년 10월 출범한 '벌교장학회'였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요. 1년에 3만원 내는 친구도 있고, 50만원씩 내기도 하고…. 가난한 장학회다 보니 큰 도움은 못 줍니다. 4년간 다해야 18명, 1인당 매년 50만원을 지급합니다. 우습죠?!"2010년 첫해에는 수혜자가 달랑 2명이었다며 그는 민망해했다.

그는 "도움을 더 주고 싶어 성공한 출향민들에게 도움도 청해봤지만 성과가 없었어요. 한 유명 작가는 지인을 통해 연락했더니 '거기 뭐하는 덴데?'하며 거절했대요. 어쩔 수 없죠."그는 신문에 소개라도 되면 사기꾼 취급에 문전박대는 안 당할 것 같아 연락해봤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장학회는 그 사이 후원자가 50명으로 늘었고, 그 덕에 올해에는 벌교읍사무소에서 추천한 청소년 25명을 서울로 초청해 영화도 보여주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밥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그게 내일(29일)이다. 그는 살짝 들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좀더 넓은 세계를 보고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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