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사이에 '모욕 스터디'라는 게 유행하고 있다. 대화나 토론을 하면서 드러나는 상대의 실수나 약점을 짚어 모욕하는 것이 이 괴상한 모임에서 하는 일이다. 기업 면접 심사 때 면접관들이 던지는 당혹스러운 질문이나 발언에 기죽지 않고 좋은 점수를 따려면 어쩔 수 없이 인내해야 할 수련이라고 참가 학생들은 받아들인다. 취업 준비생에게 "외모 때문에 고생 좀 하겠네", "그 나이가 되도록 뭐했어요?" 등 모욕적인 질문을 던지며 경쟁을 헤쳐나갈 자질을 갖추라 강요하는 사회. 우리는 어째서 모멸감을 이토록 당연하게 견디며 서로에게 굴욕으로 상처를 주는, 괴물 같은 세상을 살고 있을까.
한국인의 마음은 살풍경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유례를 찾기 힘든 가혹한 입시와 취업 경쟁, 악성 댓글로 가득한 인터넷 등 사회 구성원의 자존감을 짓밟는 정황이 가득하다. 미국 브래들리 대학이 2005년 53개국 1만7,000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자부심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44위였다. 스스로 느끼는 자존감에 있어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이다.
사회학자 김찬호(성공회대 초빙교수)는 을 통해 일상화가 된 '모멸사회'의 이면엔 이렇듯 낮은 자존감이 무겁게 자리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웬만큼 잘나지 않으면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실현하기엔 요원한 이 사회에서 비롯된 결핍과 공허를 채우기 위해 한국인이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타인에 대한 모멸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우리가 얼마나 모멸감에 익숙하고 서로 독한 말을 내뱉는지 수많은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층간 소음으로 말싸움 도중 칼을 휘두르는가 하면, 목발을 짚고 걷는 행인이 도로를 막았다고 모욕적인 감정을 실어 경적을 울린다. 손님으로부터 치욕의 언사를 들은 종업원은 다시 고용주로부터 "너희는 쓰레기통이다, 그 역할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거야"라는 더 강도 높은 멸시의 말을 듣는다.
터무니없는 모멸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눈길로 표현하는 모멸의 감정은 더 깊은 상처를 새긴다. 저자는 이를 '시선의 폭력'과 '불쌍한 대상으로 못박기'라 부른다. 장애가 있거나 흉터가 있는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이 모멸감을 주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길을 나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시선의 폭력'을 '상투적 간섭'과 관련해 설명한다.
이런 일을 익숙하게 보고 듣는다는 사실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사회 구성원은 물론 어떤 제도도 일상적인 모멸감의 확산에 맞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산업국가로서 한국은 대국이지만 정치, 사회제도와 경제력 간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말을 빌려 일상과 사회 곳곳에 '감정의 지뢰밭'이 매설돼 있다고 말한다. 사회안전망과 올바른 분배시스템 없이 무작정 산업화의 길을 달려온 탓에 분통과 울분이 쌓여 왔지만 이를 표출할 길이 막혀 누구라도 예고 없이 감정의 지뢰, 즉 모멸적인 표현을 터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책은 "날로 복잡하고 거대해지는 관료제는 인간이 지닌 실존적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며 "익명의 시스템을 통해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작업 지시 앞에서 인격은 비하되기 십상이다"고 덧붙인다. 구성원들이 모멸을 양산하도록 제도가 부추긴다는 뜻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모멸감을 덜 느끼는 세상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사회적 존재감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는 사회구조로의 혁신, 인간의 격을 서열화하는 풍토의 개선, 그리고 개인적 내면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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