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이 돌아왔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심드렁할 것 같다. 나는 후자인데, 이승환 1집 외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정이 과하지 않아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그간 다소 야박한 평가를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이번 11집 앨범 '폴 투 플라이(Fall To Fly)'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앨범은 이승환이라는 '네임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확히 말해 그가 이제까지 추구해온 '퀄리티'와 음악적 결과물의 교집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보통 한국 대중음악을 논할 때 서태지와아이들이 1990년대를 통째 정의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신해철, 윤상, 김현철, 유희열, 015B와 윤종신, 이승환도 그만큼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금도 활동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중 이승환은 가요 음반의 질적 향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5년 '휴먼(Human)' 앨범을 녹음할 때 데이비드 캠벨 같은 최정상급 프로듀서와 작업했던 것이나(그는 메탈리카, 뮤즈, 본 조비 등과 작업한 프로듀서이자 음악가 벡의 아버지기도 한데 벡의 최근작 'Morning Phase'에 지휘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 사양의 녹음장비를 완비한 드림팩토리를 설립했다는 것이 그런 평가의 근거다. 앨범뿐 아니라 라이브 공연에서도 이승환은 '소리'를 깊이 고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이승환의 앨범에 호의적이지 못했다. 사운드의 완성도가 음악적 완성도와 별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 기준에서 이승환의 발라드는 감정 과잉의 전형이었고 그게 바로 90년대 가요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사운드와 음악의 균형을 어느 정도 일치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년 동안 준비한 이 앨범은 스튜디오 레코딩에 대한 이승환의 집중도를 충분히 반영하는 인상을 주는데, 세션 멤버들이 모두 세계적인 인물이란 점은 부가적인 설명으로 넘어가더라도 트랙들은 실험적인 면보다 보편적인 감상에 집중하는 것처럼 들린다. 첫 곡 '폴 투 플라이'의 무게감과 '어른이 아니네'의 나른한 무드, 힙합그룹 가리온의 MC 메타가 참여한 '내게만 일어나는 일'의 비장함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일관된 지점을 향해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돌진이 아니라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전에 드러나던 자기 과시적인 면도 많이 줄었다.
달라진 건 또 있다. 앨범 발표에 앞서 이승환은 처음으로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고 '라디오스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네이버 뮤직에서 음감회 형식의 사전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앨범과 공연에 주력한 이전의 태도와 상당히 달랐다. 시대가 바뀌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최근 5년 사이 음악시장은 헤게모니가 음원으로 이동했고 음악을 소비하는 세대도 바뀌었다. 이승환이란 브랜드는 시장에서 이전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맥락에서 그의 변화는 필연적일 것이다. 다만 그 속에서 무게 중심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프로모션 얘기는 아니다. 먼저 공개된 '너에게만 반응해' 얘기다. 이 곡은 음악도, 뮤직비디오도 지나치게 어린 혹은 젊은 친구들 취향에 맞추려 애쓰는 아저씨의 몸부림 같다. 어색한 멜로디와 이모티콘이 난무하는 가운데 앨범의 완결성을 갉아먹는다. 이 강박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은 대상을 정확히 모를 때 생긴다. 뮤직비디오와 디지털 음원이 지배하는 시장을 앞에 둔 앨범 아티스트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그러니까 이승환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가요계에도 제대로 된 방망이 깎는 노친네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그와 함께 늙어간다면 더 좋을 테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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