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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누르는 거 다 엿보고 있는데도 좋은가

입력
2014.03.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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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를 누군가 엿본다면 화들짝 놀랄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펄쩍 뛸 일도 아니다. 당신은 이미 가장 사적인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덕분에 당신에 대해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로부터 '좋아요'를 받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로그인하는 페이스북은 수십억 명의 귀중한 정보를 끌어 모으며 "좋아요"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자발적이든, 권력기관에 의해서든 우리의 침실에는 계엄군 같은 '감시'의 탱크가 한 대씩 들어와 진을 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 25만여건 등 1급 기밀을 2010년 만천하에 공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위키리크스'의 편집장 줄리언 어산지와, 그의 뜻을 함께하는 '사이퍼펑크' 운동가들이 하는 표현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민주적으로 만든 측면이 있지만, 권력과 기업의 정보감시와 통제를 용이하게 해 더욱 완벽한 파놉티콘(감시를 위한 원형감옥)을 구축했다는 지적이다.

어산지와 디지털 인권 전문가들의 2012년 6월 토론 동영상을 토대로 한 이 책은 제목을 '사이퍼펑크'로 정했는데 이 단어는 권력화한 정보감시체계의 상징인 '암호(Cipher)에 저항(punk)한다'는 의미와, 사이버폭력 및 감시에 저항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사이퍼펑크'는 어산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한참 전인 2006년에 이미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로 일상화한 용어다.

어산지는 거대 감시 기계가 된 인터넷이 인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소리치면서 "이 책은 선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이 책은 경고다"는 말로 책을 연다. 그는 "세계 문명은 포스트모던 감시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것이며, 첨단 기술을 이해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어산지는 암호 해독 능력을 지닌 정보기술 전문가들이야말로 새로운 강제력을 앞세워 초국가적 감시와 통제를 일삼으려는 집단에 맞서야 한다며, 이는 '비폭력적인 직접 행동의 최종적 형식'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익명 시스템인 '토르 프로젝트'의 개발자 제이컵 아펠바움, '유럽 디지털권리(EDRI)' 공동 설립자 앤디 뮐러마군, 유럽시민권리단체 '라 카드라튀르 뒤 네트'의 공동 설립자 제레미 지메르망이 어산지와 함께 '인터넷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한다.

어산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증가하면 감시의 양도 늘어나며, 예전 같으면 사적 영역에 머물렀을 소통도 감시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더 큰 문제는 "감시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러한 문제가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닷가에 선 채 생각 없이 바닷바람을 인내하듯, 삶의 핵심을 인터넷에 내동댕이친 사람들이 일상의 감시를 그냥 감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토론자들은 현대 서구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사후검열도 거론한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출마할 당시의 선거운동 모금책이 희대의 사기범인 나드미 아우치로부터 돈을 받은 기사는 서구 언론 아카이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검색해도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고만 나올 뿐, 삭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고 어산지 등은 말한다.

어산지는 책을 맺으며 사람의 눈을 피해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가 '파우스트'를 보았던 경험을 들려준다. 오페라하우스마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에 둘러싸였다고 한탄하던 그가 삼엄한 경계를 뚫고 식당으로 침입해 포식하던 물쥐 한 마리를 목격한 것이다. 어산지는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통해 모든 의사 소통을 감시하고 영구적으로 기록해 구성원을 통제하는 초국가적 포스트모던 전체주의 체제 속에서 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저 똑똑한 쥐, 즉 첨단 기술로 무장한 '저항 엘리트' 뿐이라고 말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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